분류 전체보기45 이웃집 살구나무 아래에서 보낸 여름 살구는 어린 시절의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과일이다. 동네 이웃집마다 살구나무가 몇 그루씩 있었고, 열매가 익는 철이 되면 나무 아래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 됐다. 덜 익은 살구는 입안을 찌르듯 시었고, 햇볕을 충분히 받은 살구는 과즙이 달고 많았다. 지금도 살구가 시장에 나오면 일부러 사 먹는다.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이웃집 나무와 친구들, 여름 햇빛 아래서 살구를 따 먹던 시간이 함께 떠오른다. 살구는 내게 약초보다 먼저 과일이고, 식물 이름보다 먼저 여름날의 맛이다. 과육을 다 먹고 남은 씨앗을 돌로 깨 보던 호기심까지 포함해, 살구에는 어린 시절의 무심한 시간이 담겨 있다. 노란빛 열매 하나가 동네 풍경과 친구의 집, 손에 묻던 과즙을 함께 불러낸다.이웃집 살구나무가 놀이터이던 .. 2026. 8. 13. 아파트 화단을 채운 맥문동의 보라색 꽃과 검은 열매 우리 아파트 화단에는 맥문동이 많이 심어져 있다. 그동안에는 길쭉한 잎이 모여 있는 흔한 조경용 화초라고만 생각했다. 약초 강의를 듣고 나서야 왜 화단에 이렇게 넓게 심어 두는지 조금 이해하게 됐다. 사계절 내내 잎이 남아 있고 포기가 촘촘해 다른 풀이 들어설 자리가 적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화단을 지날 때면 맥문동은 그냥 배경이 아니라,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식물로 보인다. 특히 비가 온 뒤 화단을 지날 때면 잎이 더 짙어 보인다. 큰 나무 아래처럼 다른 꽃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서도 맥문동은 포기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 식물이 아파트 조경에서 오래 쓰이는 이유를 어렴풋이 생각하게 됐다.화단을 가득 채운 부추 닮은 잎우리 아파트 화단의 맥문동은 한두 포기만 .. 2026. 8. 13. 5월 약초원 밭골에서 처음 본 강활 강활은 약초 공부를 하면서 처음 이름을 알게 된 식물이다. 약초원에서 실제 표본 식물을 보기 전까지는 이름도 모습도 낯설었다. 5월 중순, 수강생들과 약초원을 찾았을 때 강활은 밭골을 만들어 심어 둔 자리에서 자라고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잎이 당귀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처음 보는 식물 앞에서 이름을 듣고, 잎을 다시 바라보던 그날의 장면이 강활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남는다. 그날 강활을 본 일은 약초원을 방문하면 낯선 이름이 실제 식물의 모습과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준 경험이기도 했다. 화면이나 책에서만 듣던 말이 밭골의 잎과 줄기로 눈앞에 나타나니, 강활이라는 이름도 전보다 덜 멀게 느껴졌다.5월 중순 밭골에서 처음 본 강활약초원을 방문한 날은 5월 중순쯤이었다. 수강생들과 함께 식물들이 심긴 .. 2026. 8. 12. 소꼴을 하던 들판에서 뒤늦게 떠올린 달맞이꽃 달맞이꽃이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들었지만, 실제로 어떤 꽃이 달맞이꽃인지 제대로 안 것은 약초 강의를 들은 뒤였다. 교수님이 영상에서 식물을 직접 보여주시자 고향의 논두렁과 작은 하천가가 떠올랐다. 키가 크고 노란 꽃을 피우던 식물을 여러 번 봤는데, 그때는 이름을 몰랐다. 이제야 그 꽃이 달맞이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했던 풍경 하나에 이름이 붙으니, 예전 기억도 조금 다르게 이어진다. 이름을 알게 된 뒤에는 오래전 소꼴을 하러 다니던 들판도 전과 조금 다르게 떠오른다. 그때는 노란 꽃이 피어 있어도 소가 먹을 풀을 얼마나 많이 베어야 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이제는 그 풀밭의 식물도 저마다 다른 이름과 이야기를 지닌 채 자라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논두렁의 노란 꽃을 뒤늦게 떠올리다고향 .. 2026. 8. 11. 아파트 화단에서 계절마다 다시 보게 된 산수유나무 광고 문구 뒤에 남은 산수유라는 이름한때 “남자한테 참 좋은데”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나도 주변에서 그 말을 따라 한 적이 있고, 지금도 가끔 그 표현을 들을 때가 있다. 처음에는 그저 광고에서 나온 익숙한 문구로만 기억했다. 나중에 그 제품의 주원료가 산수유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산수유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광고에서 들은 이름은 오래 기억에 남지만, 실제 식물의 모습까지 바로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산수유는 특별한 산이나 여행지에서만 만나는 나무가 아니라 우리 아파트 화단에도 심겨 있었다. 다른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도 노란 꽃이 보이면 산수유나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처음에는 봄에 피는 노란 꽃 때문에 산수유나무를 기억했다. 꽃이 한꺼번에 모여 피면 멀리서도.. 2026. 8. 10. 비빔밥의 고사리에서 넉줄고사리라는 이름까지 산과 계곡에서 보던 고사리고사리는 내가 알고 있던 식물 가운데 조금 특별한 쪽에 속한다. 학교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식물이라고 배웠다. 고생대의 양치식물 화석이 남아 있다는 설명을 들을 때면, 지금 산에서 보는 고사리와 아주 먼 시간의 풍경이 한꺼번에 떠오르곤 했다. 잎이 좌우로 펼쳐지고, 줄기 마디에서도 비슷한 모양이 이어지는 모습도 다른 풀과는 달라 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고사리는 산이나 계곡에서 만난 식물이다. 햇빛이 강한 길 한가운데보다는 나무가 많은 곳이나 습기가 남아 있는 자리에서 본 기억이 많다. 산길을 걷다가 여러 잎이 펼쳐진 모습을 보면 굳이 이름을 확인하지 않아도 고사리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모양이 익숙한 식물이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고사리와 식탁 위의 고사리는 내게 전혀 .. 2026. 8. 9. 이전 1 ··· 3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