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구는 어린 시절의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과일이다. 동네 이웃집마다 살구나무가 몇 그루씩 있었고, 열매가 익는 철이 되면 나무 아래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 됐다. 덜 익은 살구는 입안을 찌르듯 시었고, 햇볕을 충분히 받은 살구는 과즙이 달고 많았다. 지금도 살구가 시장에 나오면 일부러 사 먹는다.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이웃집 나무와 친구들, 여름 햇빛 아래서 살구를 따 먹던 시간이 함께 떠오른다.
살구는 내게 약초보다 먼저 과일이고, 식물 이름보다 먼저 여름날의 맛이다. 과육을 다 먹고 남은 씨앗을 돌로 깨 보던 호기심까지 포함해, 살구에는 어린 시절의 무심한 시간이 담겨 있다. 노란빛 열매 하나가 동네 풍경과 친구의 집, 손에 묻던 과즙을 함께 불러낸다.
이웃집 살구나무가 놀이터이던 여름
시골에서 살던 때에는 동네 이웃 집마다 살구나무가 몇 그루씩 자라고 있었다. 살구가 익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무가 있는 집 주변으로 모였다. 살구가 아직 단단하고 덜 익었을 때에는 색이 예뻐도 맛이 아주 셌다. 호기심에 하나를 따서 베어 물면 입안이 찡할 만큼 신맛이 났다. 그래도 며칠 뒤 같은 나무의 열매가 더 노랗고 부드러워지면 맛이 달라졌다.
햇볕을 충분히 받은 살구는 한입 베어 물면 과즙이 입안에 퍼졌다. 너무 잘 익은 것은 손으로 쥐기만 해도 말랑하게 느껴졌고, 덜 익은 것과는 전혀 다른 과일처럼 생각됐다. 그때의 나는 품종이나 수확 시기를 몰랐다. 다만 나무에 달린 열매가 날마다 조금씩 색을 바꾸고, 맛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았다.
친구 한 명의 집에는 유난히 큰 살구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살구가 한창 열릴 때 그 집에 가면 배부르게 따 먹을 수 있었다. 나무에 달린 열매를 손으로 따서 바로 먹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씻지도 않은 과일을 먹던 일이 무심하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나무 아래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일이 더 중요했다. 살구 향이 손에 남고, 잘 익은 열매의 끈적한 과즙이 손가락에 묻던 여름이었다.
나무 아래에는 떨어진 살구도 많았다. 너무 익어서 바닥에 떨어진 것은 손으로 집기 전에 한 번 더 살펴봤고, 멀쩡한 열매는 주워서 친구들과 나누기도 했다. 나무 위를 올려다보며 어느 가지에 노란 살구가 많이 달렸는지 찾던 시간도 기억난다. 아이들에게 살구나무는 그냥 과일나무가 아니라, 여름 한철 잠깐 열리는 놀이터처럼 느껴졌다.
국립생물자원관 자료에는 살구나무의 열매가 7월 무렵 노란색 또는 붉은빛이 도는 노란색으로 익는다고 소개되어 있다. 내가 기억하는 동네의 살구도 여름 한가운데 색이 짙어지고 맛이 달라졌다. 자료의 계절 설명을 읽으니, 어린 시절 나무 아래에서 열매를 살피던 시간이 떠올랐다.
어른이 된 지금도 살구 철이 되면 그 시절을 생각하며 일부러 사 먹는다. 시장에서 사 온 살구는 이웃집 나무에서 바로 따 먹던 열매와 같은 모습은 아니다. 그래도 새콤한 향과 노란빛을 보면 기억은 쉽게 이어진다. 살구는 내게 과일 하나이면서, 매년 여름마다 동네 풍경을 다시 꺼내는 이름이다.
깨서 들여다보던 단단한 씨앗
살구의 과육을 다 먹고 나면 단단한 씨앗이 남았다. 나는 그 씨앗을 그냥 버리기보다 돌이나 망치로 톡톡 깨 보곤 했다. 과육과 달리 단단한 겉껍질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껍질을 깨면 안쪽에 속씨가 나왔고, 그 모양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먹는 것보다 열어 보는 일이 더 흥미로웠다.
속씨는 겉껍질처럼 딱딱하지 않아 한 번 깨물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떫고 쌉싸래한 맛이 바로 퍼져서 곧 뱉어 버리곤 했다. 그 맛 때문에 다시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살구씨는 맛보는 대상이라기보다,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있는 것을 꺼내 보는 작은 놀잇감에 가까웠다.
씨앗을 깨는 일에는 나름의 순서가 있었다. 먼저 과육을 다 먹고, 손에 남은 끈적함을 대충 닦은 뒤, 단단한 씨를 돌 위에 올려두었다. 너무 세게 치면 안쪽까지 부서질 것 같았고, 약하게 치면 껍질이 갈라지지 않았다. 씨앗 하나를 열기 위해 돌을 고르고 손의 힘을 조절하던 일이 당시에는 꽤 진지한 놀이처럼 느껴졌다.
약초 공부를 하면서 예전에 깨서 버리던 살구씨가 기록 속에서 별도의 이름으로 다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는 조금 놀랐고, 어린 시절 무심코 버렸던 것이 떠올라 아깝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그러나 오래된 기록에 나온다는 사실과 오늘날 식품처럼 먹어도 된다는 뜻은 같지 않다는 점도 함께 알게 됐다.
그래서 지금은 살구씨를 깨서 먹거나, 씨앗을 달여 먹거나, 식품처럼 따로 활용하려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속씨를 깨물고 곧 뱉었던 기억은 그 시절의 장난으로만 남겨 두려 한다. 살구를 먹을 때는 과육을 과일로 즐기고 씨앗은 안전하게 처리하는 편이 맞겠다.
살구나무의 열매는 내게 노란 과육과 단단한 씨앗이 함께 있는 과일로 기억된다. 한쪽은 여름의 달콤함이고, 다른 한쪽은 호기심을 불러낸 껍질이었다. 다만 지금은 그 호기심과 섭취를 구분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대로 남기되, 씨앗을 먹는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지는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과일로 남아 있는 살구의 기억
살구에 관한 기억은 씨앗보다 과육에서 시작된다. 덜 익은 살구의 강한 신맛, 잘 익은 살구의 달콤한 과즙, 친구 집 나무 아래에서 배부르게 먹던 시간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살구와 관련된 다른 이름이나 기록을 알게 된 뒤에도, 내게 가장 가까운 살구는 여전히 여름 과일이다.
예전에는 살구향이 난다는 비누를 써 본 적도 있다. 실제 살구를 먹을 때의 향과 비누에서 느껴지는 향은 같지 않았지만, 살구라는 말만으로도 노란 열매와 여름날이 떠올랐다. 식물 이름은 향, 맛, 색, 장소와 함께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살구는 내게 그런 이름이다.
살구나무는 꽃이 핀 뒤 잎이 나고, 여름에는 열매를 맺는다. 나는 꽃이 피는 시기의 살구나무보다 열매가 달린 시기의 나무를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이들에게는 나무의 분류보다 지금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있는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자료를 찾아보며 꽃과 열매의 계절을 읽게 됐지만, 그 설명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익은 살구를 고르던 손이다.
지금의 나는 살구를 사 먹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지만, 예전처럼 이웃집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따 먹지는 않는다. 그 나무들이 아직 남아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살구가 나오는 계절이면, 햇빛을 받은 노란 열매와 친구 집의 큰 나무가 기억 속에서 다시 나타난다.
살구는 내게 약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 식물이라기보다, 여름을 맛으로 기억하게 하는 과일이다. 과육을 먹고 남은 씨앗을 깨 보던 호기심까지 포함해, 살구에는 어린 시절의 무심한 시간이 담겨 있다. 이제는 씨앗을 활용하려 하기보다, 한철에만 만나는 살구의 향과 과육을 천천히 기억하고 싶다.
살구를 먹을 때마다 나는 덜 익은 열매의 신맛과 잘 익은 열매의 단맛을 함께 떠올린다. 하나의 나무에서 나온 열매가 익는 정도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줬다는 사실도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남아 있다. 살구는 여름이 왔다는 것을 알려 주는 과일이었고, 나무 아래에서 친구들과 보낸 시간을 지금까지 이어 주는 과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