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 화단에는 맥문동이 많이 심어져 있다. 그동안에는 길쭉한 잎이 모여 있는 흔한 조경용 화초라고만 생각했다. 약초 강의를 듣고 나서야 왜 화단에 이렇게 넓게 심어 두는지 조금 이해하게 됐다. 사계절 내내 잎이 남아 있고 포기가 촘촘해 다른 풀이 들어설 자리가 적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화단을 지날 때면 맥문동은 그냥 배경이 아니라,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식물로 보인다.
특히 비가 온 뒤 화단을 지날 때면 잎이 더 짙어 보인다. 큰 나무 아래처럼 다른 꽃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서도 맥문동은 포기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 식물이 아파트 조경에서 오래 쓰이는 이유를 어렴풋이 생각하게 됐다.
화단을 가득 채운 부추 닮은 잎

우리 아파트 화단의 맥문동은 한두 포기만 심긴 식물이 아니다. 큰 나무 아래와 화단 가장자리를 따라 여러 포기가 이어져 있다. 잎이 길고 가늘어서 멀리서 보면 부추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가까이 보면 부추와는 다르게 한 포기의 폭이 더 넓고, 잎이 모여 있는 자리가 훨씬 크다. 화단을 덮듯이 자라 있는 모습은 채소밭의 부추와 다른 인상을 준다.
나는 맥문동이 왜 이렇게 많이 심겨 있는지 오랫동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파트 조경은 원래 그렇게 꾸며지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강의에서 맥문동이 비교적 손이 덜 가는 식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늘 같은 자리에 무성하게 남아 있던 이유를 조금 짐작하게 됐다. 내가 직접 관리해 본 것은 아니므로 관리 방식까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다른 화초가 계절마다 달라지는 동안에도 맥문동의 잎은 꾸준히 화단을 채우고 있었다.
겨울에도 화단을 보면 맥문동 잎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추운 계절에는 다른 풀들이 마르거나 땅 위가 비어 보이는 곳도 있는데, 맥문동이 모여 있는 자리는 초록빛이 남아 있다. 그래서 아파트 길을 걸을 때 계절이 바뀌어도 화단의 윤곽이 유지되는 느낌이 든다. 자료에서도 맥문동은 상록성 여러해살이풀로 소개된다. 내가 본 화단의 모습과 자료의 설명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화단에 심긴 식물은 너무 자주 봐서 오히려 이름을 묻지 않게 된다. 맥문동도 그랬다. 꽃이 피지 않는 계절에는 길고 가는 잎만 보이니, 다른 조경 식물과 구분하지 않고 지나친 날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름을 알고 나니 잎이 시작되는 자리와 포기의 크기, 화단에서 차지하는 면적을 한 번 더 보게 된다. 익숙한 식물은 이름을 배운 뒤에야 더 낯설어지기도 한다.
맥문동이 잘 자란다는 느낌은 내가 여러 해 화단을 보며 얻은 인상이다. 특별히 손질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때에도 잎은 무성했고, 빈자리가 생기면 주변 포기가 더 또렷해 보였다. 그 끈질긴 모습 때문에 아파트 화단에 어울리는 식물처럼 느껴진다. 조경의 이유를 모두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화단을 오래 같은 모습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인상을 주는 식물이라는 생각은 든다.
맥문동을 부추처럼 느끼는 것은 잎의 첫인상 때문이다. 그러나 부추처럼 식탁에서 자주 만나는 식물과 달리, 맥문동은 화단에서 무리 지어 있는 모습으로 더 익숙하다. 부추는 한 줄기씩 보게 될 때가 많지만 맥문동은 잎들이 한 곳에서 퍼져 나와 땅을 덮는다. 비슷해 보였던 잎도 자라는 모습을 보면 다른 식물이라는 점이 조금 더 분명해진다.
화단을 관리하는 분들이 어느 계절에 얼마나 손을 보는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맥문동이 전혀 관리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보기에는 다른 식물이 비어 보이는 계절에도 잎이 남아 있고, 포기 사이가 촘촘해 화단의 흙이 많이 드러나지 않았다. 강의에서 들은 설명과 내가 본모습이 만나는 부분은 바로 그런 인상이었다.
보라색 꽃에서 검은 구슬까지
여름의 맥문동은 잎만 보이던 때와 분위기가 달라진다. 잎 사이에서 꽃줄기가 올라오고, 그 줄기에 보라색 꽃이 여러 개 달린다. 처음에는 잎이 워낙 많아서 꽃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면 작은 꽃들이 한 줄기에 이어져 있어, 화단 바닥 가까이에서 보라색이 조용히 모여 있는 모습이다.
나는 맥문동의 꽃이 거의 모두 열매로 이어지는 듯 보인다는 점이 신기했다. 꽃이 지나간 줄기에는 둥글고 검은 열매가 달린다. 작은 구슬처럼 보이는 열매가 잎 사이에 모여 있으면, 노란 꽃이나 붉은 열매를 맺는 나무와는 다른 인상을 준다. 자료에는 맥문동 열매가 둥글고 검게 익는다고 적혀 있다. 내가 화단에서 본모습도 검은색 구슬에 가까웠다.
검은 열매를 보면 까마중이 떠오르기도 한다. 까마중도 까맣게 익은 열매가 눈에 띄고, 모양만 보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서로 다른 식물의 열매를 모양만으로 같은 것처럼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까마중은 내게 익으면 맛을 보았던 식물의 기억이 있지만, 맥문동 열매는 아직 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두 열매의 맛을 비교할 수는 없다.
열매가 궁금하다고 해서 화단에서 바로 따 먹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파트 조경 식물은 어떤 관리가 이뤄졌는지 알기 어렵고, 식물의 열매는 겉모양만으로 먹어도 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나는 맥문동 열매를 먹어 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남겨두려 한다. 까마중의 맛을 알고 있다는 기억이 맥문동 열매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질 뿐이다.
맥문동은 꽃이 피는 계절, 검은 열매가 달리는 계절, 잎만 남아 있는 계절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여름의 보라색 꽃을 알기 전에는 화단의 맥문동을 잎으로만 기억했다. 이제는 꽃줄기를 보면 작은 꽃이 여러 개 달렸던 모습을 떠올리고, 검은 열매를 보면 구슬 같은 모양을 생각하게 된다. 한 포기의 식물이 계절마다 보여 주는 부분이 다르다는 사실이 화단을 덜 단조롭게 만든다.
꽃이 핀 뒤 열매가 맺히는 모습을 한 계절 안에서 이어서 보면 더 신기하다. 처음에는 보라색 꽃이 피었다는 사실만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 검은 열매가 달린 줄기를 보면 같은 식물의 다른 장면을 보는 느낌이다. 꽃이 사라졌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잎 사이에 또 다른 색이 남는 셈이다. 그래서 맥문동 화단은 여름부터 가을까지도 자세히 보면 달라진 부분이 있다.
검은 열매가 달린 모습은 멀리서 보면 작아서 놓치기 쉽다. 잎이 길게 늘어진 사이에 열매가 숨어 있고, 화단을 빨리 지나면 꽃줄기 자체를 보지 못할 때도 있다. 나는 어느 날 가까이에서 보라색 꽃과 검은 열매를 차례로 발견한 뒤부터, 잎만 보던 습관이 조금 달라졌다. 맥문동은 꽃보다 잎이 먼저 떠오르는 식물이었는데 이제는 작은 검은 구슬도 함께 생각난다.
조경용 화단에서 식물 이름으로
약초 강의를 듣기 전의 맥문동은 내게 아파트 화단을 채운 잎 식물이었다. 강의 뒤에는 이름의 배경과 식물 자료를 찾아보게 됐다. 국립생물자원관 자료에는 맥문동이 그늘지고 물기가 있는 숲속이나 산기슭에서 자라는 식물로 소개되어 있다. 내가 매일 보는 아파트 화단과 자료 속 숲의 모습은 다르지만, 같은 식물이 서로 다른 자리에 심길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마트나 약재상에서 보는 건조한 맥문동과 아파트 화단의 잎도 내게는 처음에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화단에서는 길고 가는 잎과 보라색 꽃을 보는데, 포장 안에서는 작고 단단해 보이는 재료를 보게 된다. 같은 이름이지만 만나는 모습이 다르니 따로 기억되기 쉬웠다. 식물 공부를 하면서 그 둘이 한 식물의 서로 다른 부분과 과정에 닿아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됐다.
나는 예전에 구매한 맥문동을 물에 우려 마셔 본 적이 있다. 그때 느낀 맛은 약간 달고 구수한 쪽에 가까웠고, 물이 끓는 동안 은은한 향이 집 안에 퍼졌던 기억이 난다. 다만 이 글에서는 그 경험을 몸의 변화와 연결하지 않으려 한다. 내게 남은 것은 겨울의 주방에서 물을 끓이던 시간과, 화단에서 보던 잎 식물이 포장 안의 재료 이름으로 이어졌다는 기억이다.
맥문동을 아파트 화단에서 본다고 해서 모든 식물의 쓰임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잎은 부추를 닮아 보이고, 꽃은 보라색이며, 열매는 검은 구슬처럼 남는다는 정도가 지금 내가 실제로 관찰한 내용이다. 자료의 이름과 분류는 그 관찰을 보완해 주지만, 내 경험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식물 이름을 알게 된 뒤에는 화단을 볼 때 계절의 순서를 떠올리게 된다. 겨울에는 남아 있는 잎을 보고, 여름에는 보라색 꽃줄기를 찾고, 시간이 지나면 검은 열매를 살핀다. 이것은 특별한 식물 관찰을 하러 떠나는 일이 아니라, 집을 나서고 들어오는 길에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변화다. 가까운 식물 하나를 오래 보는 일도 생각보다 많은 장면을 남긴다.
맥문동은 내게 처음부터 희귀하거나 특별한 식물은 아니었다. 너무 흔해서 이름을 묻지 않았던 식물에 가까웠다. 그런데 강의를 듣고 난 뒤에는 왜 이렇게 많은 화단에 심겨 있는지 궁금해졌고, 잎과 꽃, 열매를 따로 보게 됐다. 식물 공부가 내게 준 변화는 어떤 식물을 잘 안다고 말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익숙해서 지나치던 것을 조금 천천히 보게 된 데 있는 것 같다.
이제 맥문동은 흔한 조경 식물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사계절 잎이 남은 화단, 여름의 보라색 꽃, 가을과 겨울에 보이는 검은 열매, 그리고 집 안에서 우려 보던 은은한 향이 하나의 이름 아래 연결된다. 매일 지나는 아파트 화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안의 맥문동은 전보다 훨씬 여러 모습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