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아파트 화단에서 계절마다 다시 보게 된 산수유나무

by jamkkum 2026. 8. 10.

광고 문구 뒤에 남은 산수유라는 이름

꽃이 지고 열매가 달린 산수유 나무
꽃이 지고 열매가 달린 산수유 나무

한때 “남자한테 참 좋은데”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나도 주변에서 그 말을 따라 한 적이 있고, 지금도 가끔 그 표현을 들을 때가 있다. 처음에는 그저 광고에서 나온 익숙한 문구로만 기억했다. 나중에 그 제품의 주원료가 산수유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산수유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광고에서 들은 이름은 오래 기억에 남지만, 실제 식물의 모습까지 바로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산수유는 특별한 산이나 여행지에서만 만나는 나무가 아니라 우리 아파트 화단에도 심겨 있었다. 다른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도 노란 꽃이 보이면 산수유나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처음에는 봄에 피는 노란 꽃 때문에 산수유나무를 기억했다. 꽃이 한꺼번에 모여 피면 멀리서도 색이 눈에 띄었다. 화단에 심긴 여러 나무 가운데서도 봄의 노란색은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꽃이 피는 때에는 나무의 이름을 몰라도 보기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름을 알고 난 뒤에는 같은 자리를 지날 때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됐다.

 

산수유는 내게 광고 문구, 아파트 화단, 봄의 노란 꽃이 이어진 이름이다. 식물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 세 장면을 따로 생각했다. 그런데 산수유라는 이름 하나가 그 사이를 연결해 주었다. 익숙한 말이 실제 나무로 이어지는 과정이 조금 신기했다.

붉은 열매를 한 번 맛본 날

가을이 되면 산수유나무에는 빨갛게 익은 열매가 달린다. 화단에서 보던 열매가 궁금해 호기심으로 하나를 따서 맛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빨간색이 또렷해서 달콤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과육을 살짝 베어 먹어 보니 신맛이 먼저 느껴졌다.

 

단맛은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씨가 있어서 과육만 조금 맛보는 정도였는데, 그 신맛이 생각보다 선명했다. 한 번 맛본 뒤에는 달콤한 과일처럼 먹는 열매가 아니라는 인상이 남았다. 그런데도 묘하게 다시 손이 갈 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날의 산수유는 화단의 장식처럼 보이던 열매에서, 맛을 가진 식물로 바뀌었다.

 

산수유 열매가 붉게 익은 모습을 보면 계절이 바뀌었다는 사실도 쉽게 알 수 있다. 봄에는 꽃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가을에는 잎 사이로 보이는 붉은 열매가 먼저 보였다. 같은 나무인데도 계절마다 전혀 다른 색으로 기억된다. 꽃의 노란색과 열매의 붉은색 사이에 여름을 보낸 시간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국립생물자원관 자료에는 산수유의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열매는 긴 타원형으로 붉게 익는다고 소개돼 있다. 서울식물원은 산수유 열매가 가을에 진주홍색으로 익고 겨울에도 붙어 있는 관상수라고 설명한다. 내가 화단에서 본 노란 꽃과 붉은 열매의 장면이 자료 속 계절 설명과 이어졌다. [204][207]

잎이 진 뒤에도 남아 있던 붉은색

산수유나무가 아파트 화단에 심겨 있다는 사실도 내가 관심을 두고 나서야 분명해졌다. 화단에는 계절마다 눈에 띄는 나무가 바뀌고, 한 가지 식물을 오래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봄에는 꽃이 핀 나무가 많고, 가을에는 단풍 든 잎이 먼저 보인다. 산수유는 그 사이에서 노란 꽃과 붉은 열매를 모두 보여 주기 때문에, 두 번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는 나무가 됐다.

 

열매를 처음 맛본 날에는 씨가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빨간 과육을 조금 베어 먹는 동안, 화단의 열매를 과일처럼 많이 먹을 수 있는지는 따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궁금해서 맛을 본 정도였다. 그래서 산수유 열매의 기억은 맛보다도 작은 씨와 신맛, 그리고 손끝에 닿던 붉은색에 가깝다. 같은 열매라도 식탁에서 만난 과일과 화단에서 본 열매는 느낌이 다르다.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가 내 관찰과 바로 이어진 점도 재미있었다. 겨울에 열매가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동안 계절이 바뀐 화단을 그냥 지나쳤다는 것을 알았다. 알고 난 뒤에 본 붉은 열매는 이전보다 훨씬 선명했다. 식물에 관한 설명한 줄이 익숙한 길의 풍경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강의를 들으며 산수유 열매가 한겨울, 잎이 다 떨어진 뒤에도 가지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아파트 화단의 산수유나무를 유심히 봤다. 실제로 늦가을에서 초겨울까지 붉은 열매가 그대로 가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잎이 무성할 때는 열매가 잎 사이에 가려져 눈에 덜 들어왔다. 그런데 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드러나자 빨간 열매가 훨씬 또렷해 보였다. 나무 전체가 비어 보이는 계절에 붉은 점들이 남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전에도 같은 나무 앞을 여러 번 지났을 텐데, 열매가 겨울까지 남는다는 말을 듣기 전에는 그렇게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산수유를 찾아보며 꽃은 보통 이른 봄 잎보다 먼저 피고, 열매는 가을에 붉게 익는다는 설명을 다시 읽었다. 한 나무가 봄에는 노란 꽃으로, 가을과 겨울에는 붉은 열매로 기억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화단의 나무는 매년 같은 자리에 있지만, 내가 어느 계절에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

화단에 남아 있는 계절의 순서

산수유는 봄꽃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가는 나무라고만 생각했는데, 내게는 아파트 생활과 더 가까운 나무가 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화단 옆을 지나고, 다른 아파트 단지를 걸을 때도 눈에 들어온다. 멀리 있는 식물이 아니라 자주 오가는 길에 있다는 점 때문에 계절별 모습이 더 쉽게 기억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산수유라는 이름을 광고를 통해 들었고, 그 뒤에는 노란 꽃과 붉은 열매로 확인했다. 이름을 먼저 알고 모습을 나중에 본 경우도 있고, 반대로 모습을 먼저 보고 나중에 이름을 확인한 경우도 있다. 산수유는 두 방식이 겹친 나무다. 그래서인지 다른 화단 나무보다 이름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한 가지 나무를 여러 번 본 기억은, 화단을 더 오래된 풍경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봄의 노란색과 겨울의 붉은색이 한 나무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그 순서가 마음에 남는다.

아주 더 선명하게 남는다.

산수유를 떠올리면 이제 광고에서 들은 문구보다 아파트 화단의 장면이 먼저 생각난다. 봄에는 잎보다 먼저 피던 노란 꽃, 가을에는 빨갛게 익던 열매, 잎이 진 뒤에도 가지에 남아 있던 붉은색이 차례로 이어진다. 내가 맛본 열매의 신맛도 그 사이에 남아 있다.

 

식물을 안다는 것은 이름이나 자료를 외우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같은 나무를 여러 계절에 걸쳐 보고, 한 번은 열매를 맛보고, 또 한 번은 잎이 진 뒤의 가지를 보는 식으로 기억이 쌓인다. 산수유는 내게 바로 그런 나무다. 늘 가까이에 있었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새롭게 보게 된 화단의 나무로 남아 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