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계곡에서 보던 고사리
고사리는 내가 알고 있던 식물 가운데 조금 특별한 쪽에 속한다. 학교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식물이라고 배웠다. 고생대의 양치식물 화석이 남아 있다는 설명을 들을 때면, 지금 산에서 보는 고사리와 아주 먼 시간의 풍경이 한꺼번에 떠오르곤 했다. 잎이 좌우로 펼쳐지고, 줄기 마디에서도 비슷한 모양이 이어지는 모습도 다른 풀과는 달라 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고사리는 산이나 계곡에서 만난 식물이다. 햇빛이 강한 길 한가운데보다는 나무가 많은 곳이나 습기가 남아 있는 자리에서 본 기억이 많다. 산길을 걷다가 여러 잎이 펼쳐진 모습을 보면 굳이 이름을 확인하지 않아도 고사리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모양이 익숙한 식물이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고사리와 식탁 위의 고사리는 내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기억된다. 산에서 본 고사리는 잎이 넓게 펼쳐진 초록 식물인데, 비빔밥이나 육개장에 들어가는 고사리는 길고 가는 갈색 나물이다.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나물이라 더 익숙했다. 같은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처음에는 둘이 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나중에 새순이 올라와 아직 부드러운 때에 채취한 고사리를 나물로 먹는다는 이야기를 알게 됐다. 식탁에서는 조리된 모습만 보았기에, 산에서 보던 식물의 어느 시기가 음식이 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름 하나는 알고 있었지만, 그 식물이 계절을 지나며 달라지는 모습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진주에서 올라오던 봄 고사리
예전 직장 동료 가운데 진주가 고향인 사람이 있었다. 그 동료는 고향에서 고사리 재배를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당시에는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들었다. 시장에서 고사리를 사 먹는 일은 익숙했지만, 누군가가 고향에서 재배하고 수확하는 풍경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
봄철이면 그 동료는 고향에서 갓 채취한 고사리를 삶아 말린 뒤 서울로 올라와 나누어 주기도 했다. 시중에서 사 먹던 고사리와 비교하면 향이 더 진하고, 씹을 때 쫄깃한 느낌이 남았다. 나는 그때 그것을 그저 맛있는 봄나물로 받아들였다. 어디에서 자라고, 어떻게 자라는 식물인지보다 접시에 담긴 나물의 맛이 먼저 기억났다.
동료가 건네준 고사리를 먹을 때는 산에서 보던 초록 잎을 떠올리지 못했다. 비빔밥에 넣어 먹거나 나물 반찬으로 먹던 고사리와, 산길에서 보던 고사리는 내 기억 속에서 따로 있었다. 시간이 지나 식물 이야기를 더 듣게 되면서, 그 둘이 같은 식물의 다른 시기라는 점을 조금씩 생각하게 됐다.
지금도 고사리나물이 식탁에 오르면 진주가 고향이던 동료의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봄이 되면 고향에서 가져온 나물을 나누어 주던 모습, 삶고 말린 고사리의 진한 향, 회사에서 함께 먹던 시간이 연결된다. 식물 이름은 자료에서 배울 수 있지만, 어떤 식물은 누군가가 나누어 준 음식의 기억으로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고사리를 오래된 식물이라고 배웠던 기억도 다시 떠올랐다. 정확한 시대와 분류를 학교에서 어떻게 배웠는지는 지금 또렷하지 않다. 다만 꽃과 씨앗이 아니라 포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이라는 설명, 화석으로 남은 양치식물 이야기가 어린 시절에는 꽤 신기했다. 산길에서 본 고사리 한 포기가 그런 긴 시간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은, 나물로 먹을 때는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고사리는 식탁에서 너무 익숙한 나물이라 오히려 식물로 바라보는 시간이 짧았던 것 같다. 말린 고사리는 물에 불리고 삶아 조리한 뒤에야 반찬이 된다. 그 과정이 끝난 뒤 접시에 담긴 모습만 보았기에, 봄의 새순과 여름의 잎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생각해 볼 계기가 적었다. 동료가 고향 이야기와 함께 고사리를 건네준 날은, 그런 익숙한 나물에도 재배와 계절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실감하게 한 순간이었다.
방송에서 처음 들은 넉줄고사리

넉줄고사리라는 이름은 약초 방송을 보며 처음 알게 됐다. 고사리와 비슷한 이름이 들어가 있지만, 방송 속 식물은 내가 산과 계곡에서 보던 일반적인 고사리와 다른 자리에서 자라고 있었다. 바위와 돌틈, 나무 밑동 가까이에 붙어 있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특히 바위 표면을 따라 드러난 뿌리줄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실타래처럼 얽힌 듯 보이기도 하고, 이끼 사이를 지나가는 줄처럼 보이기도 했다. 겨울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는데도 뿌리줄기가 바위 위에 남아 있는 장면이 낯설었다. 내가 알던 고사리는 땅 위에 펼쳐진 잎의 모양이 먼저 떠올랐는데, 넉줄고사리는 잎보다 바위 위를 기어가듯 이어진 부분이 더 기억에 남았다.
방송에서는 넉줄고사리가 햇빛이 드는 바위나 나무 밑동 주변에서도 자란다고 소개했다. 내가 고사리를 어둡고 습한 곳의 식물로만 생각해 왔기에, 같은 고사리류 안에도 자라는 자리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점이 의외였다. 이름이 비슷하다고 모습과 환경까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개 식물 자료에는 넉줄고사리가 Davallia mariesii라는 학명으로 등록돼 있다. 산지의 바위나 나무껍질 등에 붙어 자란다는 설명도 확인했다. 방송에서 본 바위와 이끼의 장면이 자료 속 짧은 문장과 이어졌다. 나는 넉줄고사리를 직접 본 적은 없으므로, 화면에서 본 인상과 자료에서 확인한 이름을 구분해 기억해 두려 한다.
식탁의 나물과 바위의 고사리
방송 화면 속 넉줄고사리는 내가 직접 산에서 마주친 식물이 아니어서 더 조심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화면으로 본 모양과 실제 자생지에서 보는 모습은 다를 수 있다. 그래도 바위에 붙어 있던 장면 덕분에 ‘고사리’라는 이름을 들을 때 떠올리는 풍경은 하나 더 늘었다. 산길의 초록 잎과 식탁의 나물 사이에, 돌틈의 뿌리줄기가 들어온 셈이다.
넉줄고사리의 뿌리줄기는 골쇄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는 내용을 들었다. 처음에는 비빔밥과 육개장에 들어가는 고사리의 기억이 강해서, 고사리 종류의 다른 부분이 별도의 이름으로 기록된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하지만 식물을 공부하며 이름이 하나만 있는 경우보다, 장소나 기록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됐다.
내게 중요한 것은 넉줄고사리를 어떤 목적으로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산에서 보던 초록 잎, 진주에서 올라온 갈색 나물, 바위 위에 붙어 있던 넉줄고사리의 뿌리줄기가 모두 고사리라는 이름 주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더 흥미롭다. 같은 계통의 식물이라도 내가 만난 방식은 서로 전혀 달랐다.
고사리는 이제 내게 오래된 식물이라는 학교 수업의 기억, 봄철 나물의 향, 동료가 나누어 준 고사리, 방송에서 본 바위 위의 넉줄고사리까지 여러 장면으로 남아 있다. 예전에는 산길에서 고사리 잎을 보면 익숙한 식물 하나를 봤다고만 생각했다. 지금은 그 한 장의 잎 뒤에도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모습과 다른 이름들이 이어져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