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45 화면 속 약초에서 밭의 향기로운 꽃으로, 처음 만난 백선 백선이라는 이름은 어린 시절에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처음 그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유튜브에서 여러 약초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던 때였다. 화면에는 낯선 식물이 차례로 지나갔고, 백선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에는 흰빛 꽃이 피는 약초라는 정도로만 보였고, 언젠가 실제로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 5월 무렵 여러 식물을 기르는 약초원을 찾았을 때, 밭고랑에 심어진 백선을 처음 가까이에서 보게 됐다. 영상에서 볼 때와 달리 실제 밭의 백선은 생각보다 존재감이 컸다. 꽃망울이 맺힌 줄기도 있었고, 이미 꽃을 피운 줄기도 있었다. 화면을 통해 스쳐 지나간 식물 이름이 그날에는 잎의 모양과 꽃의 빛깔, 가까이에서 맡아본 독특한 향으로 이어졌다.5월 밭고랑에서 처음 본 백선약초원에는.. 2026. 9. 12. 손끝에 남던 쑥 향과 떡방앗간의 초록빛 봄이 되면 들과 논두렁마다 어린 쑥이 올라왔다. 시골에서 자랄 때 쑥은 이름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식물이었다. 겨우내 비어 보이던 땅에 낮은 초록빛이 보이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쑥을 캐 오라고 하셨다. 내게 봄은 꽃이 피는 계절이기도 했지만, 바구니를 들고 들로 나가 쑥을 뜯는 계절이기도 했다. 그때의 쑥은 약초나 식물 정보보다 먼저, 어머니의 심부름과 쑥떡으로 이어지는 봄날의 일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쑥을 캐러 나가면 처음에는 심부름보다 놀이에 가까웠다. 누가 더 많이 캐는지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고, 작은 잎이 어느새 한 줌씩 쌓이는 모습을 보며 괜히 뿌듯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쭈그려 앉아 있으면 손가락이 아리고 다리도 저렸다. 그래도 바구니에 쑥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 쉽게 자리를 뜨.. 2026. 9. 10. 큰할아버지 산소 옆에서 캐 먹던 잔대, 모종판에서 다시 만나다 사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잔대는 약초를 공부하면서 다시 알게 된 식물이다. 하지만 잔대라는 이름을 알기 훨씬 전부터, 나는 어린 시절 산비탈에서 그 뿌리를 직접 캐서 먹어 본 적이 있었다. 큰할아버지 산소 옆의 가파른 비탈이었다. 산촌에서 살다가 이사 온 이웃집 친척 형과 함께였는데, 나는 발을 조심스럽게 옮기며 뒤따라가기 바빴고, 그 형은 익숙한 눈으로 여기저기를 살피며 잔대를 찾아냈다. 그날의 잔대는 약재나 작물로 보이지 않았다. 산비탈에서 뿌리를 캐고, 껍질을 벗기고, 하얀 속을 드러낸 뒤 맛보는 산속의 먹거리였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약초 공부를 하며 잔대가 사삼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도라지와 같은 초롱꽃과 식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때서야 산에서 캔 뿌리의 맛이 집에서 먹던 도라지와 비.. 2026. 9. 8. 할아버지 무덤가의 붉은 열매, 뒤늦게 알게 된 구기자나무 구기자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여러 곳에서 들었다. 누군가는 간이나 눈에 좋다고 말했고, 약초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는 이름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내게 구기자는 약초 이름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무덤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던, 벌초를 할 때마다 아버지가 낫으로 정리하던 나무에 가까웠다. 그때는 그 나무가 무엇인지도, 붉게 익는 열매가 어디에 쓰이는지도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구기자를 꽤 오래전부터 보고 있었던 셈이다. 다만 이름을 몰랐고, 이름을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봉분 주변에 자라던 가지, 벌초하러 갈 때 들고 가던 낫, 가을 밭일을 하며 보았던 붉은 열매, 아버지가 열매를 담금주 병에 넣던 모습이 따로따로 남아 있었다. 약초를 공부한 뒤에야 그 기억들이 모.. 2026. 9. 6. 연천 헛개마을에서 꽃과 함께 만난 헛개차의 단맛 헛개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마트와 편의점 음료 진열대에서 먼저 익숙했다. 병이나 캔에 담긴 헛개차를 보면 특별한 생각 없이 구수한 맛의 음료 한 병을 떠올렸다. 호기심에 몇 번 사 마셨을 때도 내게 헛개차는 둥굴레차를 닮은 맛에 가까웠다.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름이 실제 나무와 꽃, 그리고 계절을 따라 익는 열매에서 왔다는 사실까지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5월 마지막날, 약초를 함께 공부하던 지인과 연천의 헛개마을을 찾았다. 지인은 자기 동네에 헛개나무가 많아 헛개마을로도 불린다고 했다. 내가 그날 만난 것은 열매가 가득 달린 가을의 나무가 아니라,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 헛개나무였다. 평소 음료 이름으로만 알던 헛개가 가지 끝에 올라온 작은 꽃차례와 넓은 잎.. 2026. 9. 4. 민통선의 이른 봄, 나무에서 떨어지던 고로쇠 수액 순찰을 돌다 계곡 쪽을 보니, 나무마다 가느다란 호스가 연결돼 있었다. 호스 끝은 말통으로 이어졌고, 통 안에는 맑은 물처럼 보이는 것이 조금씩 모이고 있었다. 겨울 추위가 아직 남아 있던 때라 나는 두꺼운 군복 위에 야상까지 걸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왜 나무에 호스를 연결해 두었는지 알지 못했다. 가까이서 보니 민간인들이 나무와 말통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물어보니 고로쇠 수액을 받는 중이라고 했다. 민통선 안 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농사나 양봉, 나물과 약초 채취 허가를 받은 민간인들이 정해진 때에 드나들 수 있었는데, 고로쇠 수액을 받는 모습도 그때 처음 봤다. 겨울이 끝나 갈 무렵의 계곡은 아직 차가웠다. 나무에는 잎이 무성하지 않았고, 냇가 주변에는 겨울빛이 남아 있었다. 그런 곳에서 나.. 2026. 9. 2. 이전 1 2 3 4 5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