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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무덤가의 붉은 열매, 뒤늦게 알게 된 구기자나무

by jamkkum 2026. 9. 6.

구기자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여러 곳에서 들었다. 누군가는 간이나 눈에 좋다고 말했고, 약초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는 이름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내게 구기자는 약초 이름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무덤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던, 벌초를 할 때마다 아버지가 낫으로 정리하던 나무에 가까웠다. 그때는 그 나무가 무엇인지도, 붉게 익는 열매가 어디에 쓰이는지도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구기자를 꽤 오래전부터 보고 있었던 셈이다. 다만 이름을 몰랐고, 이름을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봉분 주변에 자라던 가지, 벌초하러 갈 때 들고 가던 낫, 가을 밭일을 하며 보았던 붉은 열매, 아버지가 열매를 담금주 병에 넣던 모습이 따로따로 남아 있었다. 약초를 공부한 뒤에야 그 기억들이 모두 구기자나무라는 한 이름으로 이어졌다.

벌초 때마다 보던 무덤가의 나무

어린 시절 할아버지 무덤에 벌초를 하러 가면, 봉분 주변에는 풀과 함께 여러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지금 생각하면 구기자나무였던 나무도 있었다. 당시에는 나무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낫으로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저 벌초할 때 함께 베어 내야 하는 풀이나 잡목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무덤 주변의 식물은 어린아이 눈에는 모두 비슷해 보였다. 어느 것은 풀이고 어느 것은 나무인지, 어떤 것은 남겨 두고 어떤 것은 정리하는지 알지 못했다. 봉분 주위가 말끔해지면 벌초가 끝난 것이고, 아버지 손에 낫이 들려 있으면 그 주변의 식물은 정리해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구기자나무도 그때의 내게는 이름을 가진 식물이 아니라, 벌초하러 갈 때마다 보게 되는 풍경의 일부였다.

 

돌아보면 구기자나무는 할아버지 무덤 근처에서만 본 나무가 아니었다. 가을에 밭일을 할 때면 무덤 주변에서 붉게 익은 열매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열매가 달렸다는 사실보다 붉은색이 더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붉고 작고 예쁜 열매가 달려 있으면 당연히 맛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마음도 기억난다. 그런데 직접 따 먹어 보니 기대했던 맛과는 달랐다.

붉고 예쁜 열매인데 왜 맛이 없을까

빨간 구기자 열매
빨간 구기자 열매

가을 무렵 할아버지 무덤 근처 밭에서 일을 하다가 구기자 열매를 따 먹었던 기억이 있다. 붉게 익은 열매는 멀리서 볼 때보다 손에 들었을 때 더 눈에 띄었다. 어린아이에게 붉은 열매는 대개 맛있을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별다른 생각 없이 따서 먹어 본 것 같다. 하지만 맛있었다는 기억은 없다. 오히려 붉고 예쁜 열매인데 왜 이런 맛이 날까 하고 의아해했던 감정이 더 선명하다.

 

그때는 그것이 구기자 열매라는 사실도 몰랐다. 열매의 이름을 모르니, 맛이 기대와 달랐다는 기억만 남았다. 지금도 구기자라는 말을 들으면 약초 수업에서 배운 설명보다 먼저 그 붉은 열매가 떠오른다. 밭일을 하다가 손에 들었던 작은 열매와, 맛을 보고 잠시 고개를 갸웃했던 어린 시절의 반응이 먼저 생각난다.

 

구기자나무는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자줏빛 꽃을 피우고, 이후 붉은 열매가 익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농촌진흥청 자료에서도 구기자나무의 꽃은 6월부터 9월 사이에 피고, 열매는 8월부터 10월 사이에 붉게 익는 것으로 소개한다. 내가 가을에 본 붉은 열매는, 어린 시절에는 이름 모를 열매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계절을 따라 익어 가던 구기자였던 셈이다. 

담금주 병에 남아 있던 붉은빛

구기자 열매와 함께 떠오르는 또 다른 장면은 아버지가 열매를 따서 담금주 병에 넣어 두시던 모습이다. 그때는 왜 열매를 병에 담아 두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어린 내게는 붉은 열매가 유리병 안에 들어가는 모습이 더 신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 안의 술빛이 은은하게 붉어졌고, 그 색깔이 유난히 곱게 보였던 기억이 남아 있다.

 

아버지가 담가 둔 구기자술은 바로 마신 것이 아니었다. 몇 년이 지나서야 맛을 본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특별한 설명보다도 술빛이었다. 투명한 병 안에서 붉은 기운이 도는 모습은, 가을밭에서 보았던 열매의 색과 이어지는 듯했다. 맛에서는 달큼한 느낌이 남았지만, 내게 구기자술은 술의 종류라기보다 아버지가 열매를 병에 담아 두던 장면으로 먼저 기억된다.

 

약초를 공부하면서 구기자나무를 다시 배우게 됐을 때,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뒤늦게 연결됐다. 할아버지 무덤 주변에서 아버지가 낫으로 정리하던 나무, 가을에 붉게 익어 있던 열매, 맛이 기대와 달라 의아했던 순간, 그리고 유리병 속에서 은은하게 붉어지던 술빛이 모두 같은 나무의 기억이었다. 이제 구기자라는 말을 들으면 약초 이름보다 먼저, 벌초를 마친 뒤의 무덤가와 아버지의 낫, 그리고 투명한 병 안에 잠겨 있던 붉은 열매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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