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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남던 쑥 향과 떡방앗간의 초록빛

by jamkkum 2026. 9. 10.

산책길에 본 쑥
산책길에 본 쑥

봄이 되면 들과 논두렁마다 어린 쑥이 올라왔다. 시골에서 자랄 때 쑥은 이름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식물이었다. 겨우내 비어 보이던 땅에 낮은 초록빛이 보이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쑥을 캐 오라고 하셨다. 내게 봄은 꽃이 피는 계절이기도 했지만, 바구니를 들고 들로 나가 쑥을 뜯는 계절이기도 했다. 그때의 쑥은 약초나 식물 정보보다 먼저, 어머니의 심부름과 쑥떡으로 이어지는 봄날의 일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쑥을 캐러 나가면 처음에는 심부름보다 놀이에 가까웠다. 누가 더 많이 캐는지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고, 작은 잎이 어느새 한 줌씩 쌓이는 모습을 보며 괜히 뿌듯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쭈그려 앉아 있으면 손가락이 아리고 다리도 저렸다. 그래도 바구니에 쑥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렇게 캔 쑥을 어머니께 드리면, 쌀과 함께 떡방앗간에 갔다가 진한 초록빛 쑥떡으로 돌아왔다.

논두렁에 앉아 채우던 작은 바구니

어린 쑥은 들과 논두렁의 낮은 자리에서 자주 보였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는 풀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봄이 오면 쑥을 찾아냈다. 손으로 한 잎씩 뜯어 바구니에 넣는 일은 처음에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계속 쭈그려 앉아 있다 보면 손이 아리고,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팔도 조금씩 무거워졌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는 힘든 것보다 바구니가 얼마나 찼는지가 더 중요했다.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쑥을 캐는 시간도 덜 지루했다. 조금 많이 캤다 싶으면 어머니께 달려가 바구니를 내밀며 얼마나 모았는지 보여 드리곤 했다. 어머니께 자랑하고 나면 다시 논두렁으로 돌아가 쑥을 더 뜯었다. 내가 캔 쑥이 많을수록 쑥떡도 더 많이 만들어질 것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쑥을 캐는 일과 떡을 기다리는 일은 내게 따로 떨어진 일이 아니었다.

 

오래 뜯고 난 뒤에는 손끝에 쑥 향이 진하게 남았다. 손을 씻은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던 그 향이 지금까지 기억나는 것을 보면, 그때 쑥을 얼마나 오래 만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쑥 향을 특별히 감상하지 않았다. 쑥을 많이 뜯고 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냄새라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그 향 하나만으로도 논두렁에 앉아 있던 시간과 바구니를 든 손이 함께 떠오른다.

쌀과 쑥이 떡이 되어 돌아오던 날

한 바구니 가득 캔 쑥을 어머니께 드리면, 어머니는 쌀과 함께 떡방앗간에 가져가셨다. 내가 들에서 뜯었던 작은 잎들이 쌀과 섞여 떡이 되어 돌아온다는 과정은 어린 내게 꽤 신기한 일이었다. 쑥을 들고나갈 때와 떡을 들고 돌아올 때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들판에서는 작고 여린 잎이었던 쑥이, 떡방앗간을 다녀온 뒤에는 넓고 둥근 떡 속에서 더 짙은 초록빛을 내고 있었다.

 

갓 만들어 온 쑥떡은 색부터 눈에 띄었다. 봄 들판에서 보았던 어린 쑥보다 더 진하고 선명한 초록빛이었다. 따뜻한 떡에서 나는 쑥 향도 손끝에 남았던 생쑥의 향과는 달랐다. 들판에서 맡은 향이 손에 묻는 향이었다면, 쑥떡에서 나는 향은 쌀과 함께 어우러진 따뜻한 향이었다. 나는 쑥을 뜯던 날이면 떡방앗간에서 쑥떡이 돌아오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기다렸던 것 같다.

 

어머니가 쑥을 캐 오라고 하신 이유는 분명 쑥떡을 만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내게는 그 과정 전체가 봄날의 행사처럼 느껴졌다. 바구니를 들고 나가는 일, 친구들과 논두렁에 앉는 일, 손끝에 향이 남는 일, 어머니께 쑥을 드리는 일, 그리고 떡방앗간에서 돌아온 떡을 보는 일이 차례로 이어졌다. 쑥떡 한 조각에는 쑥의 맛만이 아니라, 그날 하루 동안 했던 일들이 함께 들어 있는 듯했다.

도시의 쑥떡에서 찾는 봄날의 향

지금도 도시에서 쑥떡을 사 먹을 때가 있다. 떡집 진열장에 놓인 쑥떡은 모양도 단정하고, 쑥 향도 분명하다. 그런데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쑥떡과는 어딘가 다른 느낌이 든다. 지금의 쑥떡이 덜 맛있거나 향이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지금 먹는 떡에는 내가 논두렁에 쭈그려 앉아 쑥을 뜯던 시간이 함께 들어 있지 않다.

 

어린 시절의 쑥떡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바구니를 들고 나갔던 일, 손이 아릴 때까지 쑥을 뜯었던 일, 중간중간 어머니께 달려가 자랑하던 일, 떡방앗간에서 만들어질 떡을 기다리던 일이 모두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 지금 쑥떡을 먹을 때도 떡의 맛 하나만 기억나지는 않는다. 진한 초록빛을 보면 들판의 어린 쑥이 떠오르고, 향을 맡으면 손끝에 오래 남아 있던 냄새가 먼저 생각난다.

 

쑥은 어린순을 나물이나 떡 재료로 이용해 온 친숙한 식물이다. 하지만 내게 쑥은 식물 이름이나 봄나물이라는 말보다 먼저, 어머니께 드릴 쑥을 바구니에 담던 기억이다. 도시에서 쑥떡을 사 먹을 때마다 예전과 다른 아쉬움이 남는 것도, 맛 자체보다 그 떡을 기다리던 봄날의 시간이 빠져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지금도 쑥 향을 맡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약초가 아니라, 논두렁에 앉아 있던 어린 날의 손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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