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잔대는 약초를 공부하면서 다시 알게 된 식물이다. 하지만 잔대라는 이름을 알기 훨씬 전부터, 나는 어린 시절 산비탈에서 그 뿌리를 직접 캐서 먹어 본 적이 있었다. 큰할아버지 산소 옆의 가파른 비탈이었다. 산촌에서 살다가 이사 온 이웃집 친척 형과 함께였는데, 나는 발을 조심스럽게 옮기며 뒤따라가기 바빴고, 그 형은 익숙한 눈으로 여기저기를 살피며 잔대를 찾아냈다.
그날의 잔대는 약재나 작물로 보이지 않았다. 산비탈에서 뿌리를 캐고, 껍질을 벗기고, 하얀 속을 드러낸 뒤 맛보는 산속의 먹거리였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약초 공부를 하며 잔대가 사삼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도라지와 같은 초롱꽃과 식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때서야 산에서 캔 뿌리의 맛이 집에서 먹던 도라지와 비슷하게 느껴졌던 이유가 조금은 연결됐다. 최근에는 지인의 집에서 모종판에 가지런히 올라온 잔대를 보며, 그 오래된 산비탈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가파른 산비탈을 앞서가던 친척 형
큰할아버지 산소 옆 산비탈은 어린 내게 제법 가파르게 느껴졌다.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살피며 한 걸음씩 따라가야 했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도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산촌에서 살다가 이사 온 친척 형은 그 비탈이 익숙한 듯 앞서갔다. 나는 그 형이 어디로 가는지 따라가기에 바빴지만, 형은 가다가 멈추고, 주변을 살피고, 다시 조금 옮겨 가며 잔대를 찾아냈다.
그때 내게 잔대는 어떤 잎을 가진 식물인지, 어떻게 구별하는지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친척 형이 알아보고 찾아낸 뿌리였기 때문에, 나는 그저 옆에서 보며 따라갔다. 지금 생각하면 산에서 자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눈에 들어오던 식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그 산비탈은 큰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곳이면서 동시에, 친척 형이 이름 모를 뿌리를 척척 찾아내던 낯선 장소였다.
잔대를 찾은 뒤에는 뿌리를 캐냈다. 땅속에서 나온 뿌리는 흙이 묻은 채였고, 친척 형은 껍질을 벗겨 먹어 보라고 건넸다. 나는 산에서 막 나온 뿌리를 먹는다는 것이 조금 낯설었다. 껍질이 벗겨지자 뽀얀 속살이 드러났는데, 그 하얀 단면을 보면서도 이게 정말 먹는 것이 맞나 하고 잠시 머뭇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형이 건넨 것을 받아 맛봤고, 그 순간의 낯섦이 오히려 오래 남았다.
도라지와 비슷했던 하얀 뿌리의 맛
집에서는 도라지를 길러 먹던 터라, 산에서 캔 잔대의 맛도 어딘가 도라지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당시에는 왜 비슷한지 알지 못했다. 그저 산에서 캔 뿌리인데 집에서 먹던 도라지와 닮은 맛이 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산에서 찾은 뿌리와 집 밭에서 기른 도라지가 내 입에서는 같은 쪽의 맛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어린 내게는 작지만 이상한 발견처럼 남았다.
약초를 공부하면서 잔대가 도라지와 같은 초롱꽃과 식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산비탈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농촌진흥청은 잔대의 씨를 길러 모종으로 옮겨 심는 재배 방법을 소개하고 있으며, 잔대를 약용작물 가운데 하나로 다룬다. 산에서 우연히 캐서 먹었던 뿌리가 누군가에게는 씨를 심고 모종을 기르는 작물이라는 사실이, 어린 시절의 경험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어졌다.
잔대는 산과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알려져 있고, 여름부터 초가을 사이에는 줄기 끝에 종 모양의 꽃을 피운다. 내가 어린 시절 만난 것은 꽃이 핀 잔대가 아니라, 땅속에서 막 꺼낸 뿌리였다. 그래서 잔대라는 이름을 들으면 꽃의 색보다도 먼저 흙이 묻은 뿌리와 껍질을 벗긴 하얀 속이 떠오른다. 도라지와 비슷하게 느껴졌던 맛도, 그때는 식물의 분류보다 내 입안에 남은 감각으로 먼저 기억됐다.
모종판에서 다시 이어진 산비탈의 기억

그 뒤로는 잔대를 먹거나 따로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산비탈에서 한 번 캐 먹어 본 일이 오래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약초를 함께 공부하는 지인의 집에 갔을 때, 모종판에 가지런히 올라온 잔대를 보게 됐다.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운 뒤 다시 심어 기른다고 들었다. 산비탈에서 친척 형이 찾아내던 뿌리와, 모종판에서 줄지어 싹을 틔운 어린 식물을 같은 이름으로 연결하는 데는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잔대를 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식물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산소 옆의 비탈, 흙을 파내야 보이는 뿌리, 산에서 살던 친척 형의 익숙한 손이 모두 잔대의 기억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종판에서 본 잔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흙 속 깊은 곳에서 우연히 찾아낸 뿌리가 아니라, 사람이 씨를 심고 싹을 틔우며 돌보는 식물로 보였다.
그날 모종판을 보며 가장 신기했던 것은 잔대가 달라졌다는 사실보다, 내가 잔대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예전에는 큰할아버지 산소 옆에서 친척 형이 찾아낸 특별한 뿌리였고, 지금은 누군가 씨앗부터 길러 작물로 키우는 식물이었다. 그래도 내게 잔대의 첫 장면은 여전히 산비탈이다. 가파른 길을 조심조심 뒤따라가던 일, 껍질을 벗긴 하얀 뿌리를 앞에 두고 잠시 망설이던 일, 도라지와 닮은 맛이 의아했던 순간이 모종판의 어린싹과 함께 다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