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식물기록7 맛은 밍밍했지만 잊히지 않던 논두렁의 뱀딸기 어린 시절 산과 들, 밭과 논두렁에는 뱀딸기가 흔했다. 풀숲 가까이에 빨갛고 동그란 열매가 보이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산딸기처럼 달거나 일반 딸기처럼 새콤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도, 손을 뻗기 전에는 늘 한 번쯤 주변을 살폈다. 이름에 뱀이 들어간 열매였기 때문이다. 뱀이 좋아하는 딸기인지, 열매를 따려다 뱀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어린 마음에는 이름부터 조금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빨간 열매는 눈에 잘 띄었다. 논두렁의 물기 있는 그늘이나 밭 가장자리에서 뱀딸기를 발견하면, 나는 나뭇가지로 주변을 먼저 휘휘 저어 본 뒤에야 손을 넣곤 했다. 맛은 기대와 달리 밍밍했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그 맛없는 열매도 그냥 따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뱀딸기는 맛있는 열매라서 기억나는 것이 아니.. 2026. 9. 23. 의성을 지나며 보던 개나리, 연교라는 이름을 알기까지 개나리는 어린 시절부터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던 꽃이었다. 진달래와 함께 다른 꽃보다 먼저 노랗게 피는 개나리를 보면, 겨우내 움츠러들어 있던 풍경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학교 담장과 동네 울타리를 따라 노란 꽃이 번지면 봄이 왔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게 개나리는 특별한 식물 이름이라기보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계절과 함께 찾아오는 익숙한 봄빛이었다. 특히 개학을 앞두고 새 학년이 시작될 무렵, 개나리가 만개한 모습은 유난히 또렷하게 기억난다. 긴 겨울이 지나고 새 교실과 새 선생님, 달라질 친구들을 생각하던 때였다. 설렘과 낯섦이 함께 있던 시기에 학교 담장과 길가를 따라 피던 노란 꽃은 늘 먼저 봄을 알려 주었다. 그때의 나는 개나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같은 개.. 2026. 9. 17. 화면 속 약초에서 밭의 향기로운 꽃으로, 처음 만난 백선 백선이라는 이름은 어린 시절에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처음 그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유튜브에서 여러 약초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던 때였다. 화면에는 낯선 식물이 차례로 지나갔고, 백선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에는 흰빛 꽃이 피는 약초라는 정도로만 보였고, 언젠가 실제로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 5월 무렵 여러 식물을 기르는 약초원을 찾았을 때, 밭고랑에 심어진 백선을 처음 가까이에서 보게 됐다. 영상에서 볼 때와 달리 실제 밭의 백선은 생각보다 존재감이 컸다. 꽃망울이 맺힌 줄기도 있었고, 이미 꽃을 피운 줄기도 있었다. 화면을 통해 스쳐 지나간 식물 이름이 그날에는 잎의 모양과 꽃의 빛깔, 가까이에서 맡아본 독특한 향으로 이어졌다.5월 밭고랑에서 처음 본 백선약초원에는.. 2026. 9. 12. 손끝에 남던 쑥 향과 떡방앗간의 초록빛 봄이 되면 들과 논두렁마다 어린 쑥이 올라왔다. 시골에서 자랄 때 쑥은 이름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식물이었다. 겨우내 비어 보이던 땅에 낮은 초록빛이 보이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쑥을 캐 오라고 하셨다. 내게 봄은 꽃이 피는 계절이기도 했지만, 바구니를 들고 들로 나가 쑥을 뜯는 계절이기도 했다. 그때의 쑥은 약초나 식물 정보보다 먼저, 어머니의 심부름과 쑥떡으로 이어지는 봄날의 일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쑥을 캐러 나가면 처음에는 심부름보다 놀이에 가까웠다. 누가 더 많이 캐는지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고, 작은 잎이 어느새 한 줌씩 쌓이는 모습을 보며 괜히 뿌듯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쭈그려 앉아 있으면 손가락이 아리고 다리도 저렸다. 그래도 바구니에 쑥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 쉽게 자리를 뜨.. 2026. 9. 10. 큰할아버지 산소 옆에서 캐 먹던 잔대, 모종판에서 다시 만나다 사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잔대는 약초를 공부하면서 다시 알게 된 식물이다. 하지만 잔대라는 이름을 알기 훨씬 전부터, 나는 어린 시절 산비탈에서 그 뿌리를 직접 캐서 먹어 본 적이 있었다. 큰할아버지 산소 옆의 가파른 비탈이었다. 산촌에서 살다가 이사 온 이웃집 친척 형과 함께였는데, 나는 발을 조심스럽게 옮기며 뒤따라가기 바빴고, 그 형은 익숙한 눈으로 여기저기를 살피며 잔대를 찾아냈다. 그날의 잔대는 약재나 작물로 보이지 않았다. 산비탈에서 뿌리를 캐고, 껍질을 벗기고, 하얀 속을 드러낸 뒤 맛보는 산속의 먹거리였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약초 공부를 하며 잔대가 사삼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도라지와 같은 초롱꽃과 식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때서야 산에서 캔 뿌리의 맛이 집에서 먹던 도라지와 비.. 2026. 9. 8. 할아버지 무덤가의 붉은 열매, 뒤늦게 알게 된 구기자나무 구기자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여러 곳에서 들었다. 누군가는 간이나 눈에 좋다고 말했고, 약초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는 이름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내게 구기자는 약초 이름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무덤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던, 벌초를 할 때마다 아버지가 낫으로 정리하던 나무에 가까웠다. 그때는 그 나무가 무엇인지도, 붉게 익는 열매가 어디에 쓰이는지도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구기자를 꽤 오래전부터 보고 있었던 셈이다. 다만 이름을 몰랐고, 이름을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봉분 주변에 자라던 가지, 벌초하러 갈 때 들고 가던 낫, 가을 밭일을 하며 보았던 붉은 열매, 아버지가 열매를 담금주 병에 넣던 모습이 따로따로 남아 있었다. 약초를 공부한 뒤에야 그 기억들이 모.. 2026. 9. 6.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