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산과 들, 밭과 논두렁에는 뱀딸기가 흔했다. 풀숲 가까이에 빨갛고 동그란 열매가 보이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산딸기처럼 달거나 일반 딸기처럼 새콤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도, 손을 뻗기 전에는 늘 한 번쯤 주변을 살폈다. 이름에 뱀이 들어간 열매였기 때문이다. 뱀이 좋아하는 딸기인지, 열매를 따려다 뱀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어린 마음에는 이름부터 조금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빨간 열매는 눈에 잘 띄었다. 논두렁의 물기 있는 그늘이나 밭 가장자리에서 뱀딸기를 발견하면, 나는 나뭇가지로 주변을 먼저 휘휘 저어 본 뒤에야 손을 넣곤 했다. 맛은 기대와 달리 밍밍했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그 맛없는 열매도 그냥 따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뱀딸기는 맛있는 열매라서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빨간 열매를 앞에 두고도 쉽게 손을 뻗지 못하던 어린 시절의 겁과 호기심 때문에 더 오래 남은 식물인지도 모른다.
풀숲에 손을 넣기 전의 망설임
뱀딸기라는 이름은 어린 내게 식물 이름이라기보다 경고처럼 들렸다. 뱀이 좋아하는 열매일 것 같았고, 열매가 있는 풀숲에는 뱀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앞에 빨갛게 익은 열매가 있어도 바로 손을 넣지 못했다. 먼저 작은 나뭇가지로 풀을 건드려 보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열매를 땄다.
괜히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논두렁의 물기 있는 자리 나 그늘진 곳은 어린 눈에 뱀이 나올 법한 장소처럼 보였다. 지금 돌아보면 실제로 뱀을 본 기억보다, 혹시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더 선명하다. 열매를 따는 일은 짧았지만, 손을 뻗기 전의 망설임은 늘 길었다. 그래서 눈에 잘 띄는 열매만 조심스럽게 골라 따고, 풀숲 안쪽까지 뒤져 보지는 못했다.
그때 조금 더 대범했더라면 더 많은 열매를 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내게는 열매의 양보다 손을 넣어도 괜찮은지가 더 큰 문제였다. 산딸기처럼 가시에 찔릴 걱정은 없었다. 줄기에 가시가 없고 열매도 비교적 커서 따기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뱀딸기라는 이름과 풀숲의 분위기가 겹치면, 빨간 열매 하나를 따는 일도 작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됐다.
예쁘지만 기대와 달랐던 맛

뱀딸기는 빨갛고 동그랗게 익은 모습만 보면 산딸기나 일반 딸기처럼 맛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열매를 발견할 때마다 조금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입에 넣으면 달지도 시지도 않고, 그저 밍밍한 맛이 남았다. 어린 시절에는 붉고 예쁜 열매가 왜 이렇게 맛이 없을까 하고 의아해했다. 모양이 주는 기대와 실제 맛 사이의 차이가 뱀딸기를 기억하게 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맛이 특별하지 않아도 열매를 따 먹던 때가 있었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의 들판에서는, 빨간 열매 하나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산딸기처럼 먼저 찾게 되는 열매는 아니었다. 친구들과 산딸기를 발견하면 누가 먼저 딸지 마음이 급해졌지만, 뱀딸기는 발견해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름이 주는 꺼림칙함과 밍밍한 맛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다지 인기 있는 열매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뱀딸기에는 산딸기와 다른 장점이 있었다. 가시에 찔릴 걱정 없이 열매를 딸 수 있었고, 한 번 눈에 들어오면 빨간 열매가 제법 크게 보였다. 그래서 겁이 나면서도, 눈앞에 있는 열매를 완전히 모른 척하기는 어려웠다. 한두 개를 따서 맛을 보고는 역시 별맛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음에 또 발견하면 다시 살피게 됐다. 내게 뱀딸기는 맛있어서 찾는 열매가 아니라, 늘 한 번쯤은 손을 뻗어 보게 되는 열매였다.
잡초 열매에서 사매라는 이름까지
산딸기와 달리 뱀딸기는 친구들 사이에서 먼저 찾는 열매는 아니었다. 산딸기는 달고 새콤한 맛을 기대할 수 있었고, 발견하면 서로 먼저 따려 했던 기억이 있다. 반면 뱀딸기는 빨간 열매가 보여도 맛이 밍밍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 한 번 보고 지나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도 논두렁 가까이에 드문드문 보이는 붉은빛은 늘 시선을 끌었다. 맛으로는 산딸기를 이기지 못했지만, 풀숲에서 혼자 반짝이던 모양만큼은 다른 열매와 달랐다.
어린 시절에는 식물의 이름을 안다는 것이 대단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먹을 수 있는지, 맛이 있는지, 손을 대도 되는지 정도가 중요했다. 뱀딸기는 이름을 알고도 조심스러웠고, 맛을 알고도 가끔 따 먹었다. 시간이 지나 사매라는 이름을 듣고 나서야, 내가 오래전부터 보아 온 식물 하나가 다른 이름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지금도 내 기억 속 뱀딸기는 어려운 이름보다 먼저, 풀숲 가까이에서 빨갛게 익어 있던 열매다.
약초를 공부하면서 뱀딸기가 사매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논두렁에서 보던 빨간 열매가 다시 떠올랐다. 예전에는 맛없는 잡초 열매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 다른 이름과 설명을 갖게 된 것이다. 이름을 새로 안다고 해서 어린 시절의 밍밍한 맛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무심히 지나쳤던 열매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되는 계기는 됐다.
지금도 뱀딸기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약초 이름이 아니다. 논두렁의 물기 있는 그늘, 풀숲을 나뭇가지로 먼저 저어 보던 손, 빨갛고 예쁜 열매를 따서 맛본 뒤 고개를 갸웃하던 어린 마음이 함께 떠오른다. 다른 열매처럼 맛있다는 기억은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내게 뱀딸기는 흔한 들풀 사이에서 빨간빛으로 눈에 띄던 열매이면서, 겁이 많던 어린 시절의 나를 함께 데려오는 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