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5 손끝에 남던 쑥 향과 떡방앗간의 초록빛 봄이 되면 들과 논두렁마다 어린 쑥이 올라왔다. 시골에서 자랄 때 쑥은 이름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식물이었다. 겨우내 비어 보이던 땅에 낮은 초록빛이 보이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쑥을 캐 오라고 하셨다. 내게 봄은 꽃이 피는 계절이기도 했지만, 바구니를 들고 들로 나가 쑥을 뜯는 계절이기도 했다. 그때의 쑥은 약초나 식물 정보보다 먼저, 어머니의 심부름과 쑥떡으로 이어지는 봄날의 일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쑥을 캐러 나가면 처음에는 심부름보다 놀이에 가까웠다. 누가 더 많이 캐는지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고, 작은 잎이 어느새 한 줌씩 쌓이는 모습을 보며 괜히 뿌듯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쭈그려 앉아 있으면 손가락이 아리고 다리도 저렸다. 그래도 바구니에 쑥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 쉽게 자리를 뜨.. 2026. 9. 10. 고참들이 따 주던 두릅 새순과 봄 산의 기억 두릅나무는 생각보다 도로 가까이에서 자주 보던 나무였다. 봄에 차를 타고 길을 달리다 보면, 하얀빛이 도는 줄기 끝에서 녹색 새순이 올라오는 나무가 눈에 들어오곤 했다. 그때는 이름을 알지 못해 그냥 봄에 나는 순이 있는 나무라고만 생각했다. 두릅을 처음 제대로 먹은 것은 군 복무 때였다. 고참들이 가시를 피해 하나씩 따 준 새순을 데쳐 먹으며, 도로변에서 보던 나무와 식탁의 봄나물이 같은 이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두릅나무라는 말을 들으면 이제는 새순보다 먼저 산길에서 가시를 피해 손을 움직이던 고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향긋하면서도 쌉쌀했던 새순의 맛, 산속에서 잠시 쉬던 시간, 봄에 도로변에서 보이던 초록빛 순이 한 나무의 기억으로 이어진다.도로변에서 보던 하얀 줄기와 초.. 2026. 8. 18. 집 앞밭의 꽃에서 오늘 아침 도라지무침까지 도라지는 내 삶에서 가장 오래 함께해 온 나물이다. 어린 시절 시골집 아침 식탁에는 도라지무침이 자주 올라왔고, 오늘 아침에도 밥과 함께 도라지무침을 먹었다. 같은 반찬을 오랜 시간 먹어 왔지만, 도라지는 매번 다른 장면을 데려온다. 집 앞밭에서 본 보라색 꽃과 통통한 봉오리, 군 복무 때 산에서 만난 도라지, 그리고 지금의 식탁이 한 이름 아래 이어진다. 내게 도라지는 낯선 식물이 아니라, 계절과 장소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남아 있는 식물이다. 도라지라는 말을 들으면 약초보다 먼저 나물과 꽃이 떠오른다. 오늘 아침 먹은 도라지무침도 어린 시절의 식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맛으로 느껴졌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반찬 하나가 과거의 밭과 연결되는 일이 내게는 자연스럽다.집 앞밭에서 터지던 도라지 봉오리어린.. 2026. 8. 14. 비빔밥의 고사리에서 넉줄고사리라는 이름까지 산과 계곡에서 보던 고사리고사리는 내가 알고 있던 식물 가운데 조금 특별한 쪽에 속한다. 학교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식물이라고 배웠다. 고생대의 양치식물 화석이 남아 있다는 설명을 들을 때면, 지금 산에서 보는 고사리와 아주 먼 시간의 풍경이 한꺼번에 떠오르곤 했다. 잎이 좌우로 펼쳐지고, 줄기 마디에서도 비슷한 모양이 이어지는 모습도 다른 풀과는 달라 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고사리는 산이나 계곡에서 만난 식물이다. 햇빛이 강한 길 한가운데보다는 나무가 많은 곳이나 습기가 남아 있는 자리에서 본 기억이 많다. 산길을 걷다가 여러 잎이 펼쳐진 모습을 보면 굳이 이름을 확인하지 않아도 고사리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모양이 익숙한 식물이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고사리와 식탁 위의 고사리는 내게 전혀 .. 2026. 8. 9. 군대에서 처음 맛본 두릅과 땅두릅이라는 이름 최전방 봄 산에서 배운 새순내가 두릅을 처음 먹어본 것은 30년 전 군대에서였다.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때라 봄이 오면 산으로 훈련이나 작업을 나가는 일이 있었다. 부대 가까운 야산에는 봄철마다 두릅나무가 모여 자라는 곳이 있었고, 선임들을 따라다니며 새순을 따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때의 나는 두릅이라는 이름은 알았어도, 어느 부분을 살펴야 하는지와 어떻게 손을 대야 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두릅나무에는 가시가 많았다. 선임들은 가시를 피하면서 새순을 꺾었지만, 처음 따라 해 보는 내 손에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 몰라 손을 여러 번 긁혔다. 그 뒤로는 무작정 손부터 내밀기보다, 먼저 줄기와 가시가 있는 자리를 살피게 됐다. 봄 산에서 새순 하나를 따는 일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 2026. 8. 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