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 봄 산에서 배운 새순
내가 두릅을 처음 먹어본 것은 30년 전 군대에서였다.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때라 봄이 오면 산으로 훈련이나 작업을 나가는 일이 있었다. 부대 가까운 야산에는 봄철마다 두릅나무가 모여 자라는 곳이 있었고, 선임들을 따라다니며 새순을 따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때의 나는 두릅이라는 이름은 알았어도, 어느 부분을 살펴야 하는지와 어떻게 손을 대야 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두릅나무에는 가시가 많았다. 선임들은 가시를 피하면서 새순을 꺾었지만, 처음 따라 해 보는 내 손에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 몰라 손을 여러 번 긁혔다. 그 뒤로는 무작정 손부터 내밀기보다, 먼저 줄기와 가시가 있는 자리를 살피게 됐다. 봄 산에서 새순 하나를 따는 일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작은 배움이었다.
그렇게 가져온 두릅은 부대에서 데쳐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쌉싸름하면서도 향긋했던 맛이 지금도 선명하다. 봄철 산에서 따온 새순이라는 말만으로도 평소 반찬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재배한 두릅을 시장에서 쉽게 사 먹는 때가 아니었고, 산에서 직접 본 것을 식탁에서 다시 만나는 일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 시절 부대 주변은 깊은 산과 민간인 통제 구역에 가까운 곳이었다. 훈련과 작업을 나가면서 두릅 말고도 달래, 곰취, 취나물을 보았다. 산도라지, 더덕, 오미자, 칡, 다래, 머루처럼 이름을 들은 식물도 있었다. 그때는 이런 식물들이 책이나 기록에 따로 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산에서 만난 계절의 먹거리라고 생각했고, 함께 움직이던 사람들과 봄 산의 풍경을 기억했다.
군 생활을 떠올리면 봄 산의 공기와 작업을 마친 뒤의 피곤함도 같이 생각난다. 새순을 찾아 걷는 일은 계획된 식물 관찰이라기보다 그날의 일과 중간에 자연스럽게 생긴 일이었다. 누군가 먼저 발견하면 뒤따르던 사람들도 주변을 살폈고, 이름을 아는 선임의 말에 따라 움직였다. 나는 그때 식물의 특징을 메모하거나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정확한 모양보다 가시를 피해 손을 움직였던 감각과, 데친 뒤 고추장에 찍어 먹던 맛에 가깝다.
한편 산에서 본 식물은 계절과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르게 기억된다. 같은 봄이라도 햇볕이 드는 자리와 그늘진 자리는 분위기가 달랐고, 훈련길에서 마주친 풀과 나무는 늘 빠르게 지나갔다. 그때 보았던 달래나 곰취, 취나물도 지금 시장에서 만나는 모습과는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름을 많이 아는 것보다, 그 식물이 어느 날 어떤 풍경 속에 있었는지를 떠올리는 일이 내게는 더 오래 남는다.
나무 두릅과 땅두릅을 구분해 본 날

땅두릅이라는 이름은 결혼한 뒤 아내를 통해 더 익숙해졌다. 봄이 되면 아내가 시장이나 마트에서 두릅 또는 땅두릅을 사 오곤 했다. 처음에는 두릅이라는 이름만 보고 비슷한 봄나물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몇 번 식탁에 올라온 뒤에는 나무에서 나는 두릅과 땅두릅이라는 이름이 따로 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아내는 사 온 두릅이나 땅두릅을 살짝 데쳐서 내놓았다. 접시에 담긴 봄나물을 초장에 찍어 먹으면 쌉싸름한 맛이 났다. 군대에서 두릅을 데쳐 고추장에 찍어 먹었던 기억과는 양념이 조금 달랐지만, 봄이 되면 다시 찾게 되는 향과 맛이라는 점은 비슷하게 느껴졌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보는 땅두릅은 손질된 상태로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식탁에서는 봄나물로 익숙해졌지만, 어떤 모습으로 자라는 식물인지까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나무에서 올라오는 두릅 새순은 군대 시절의 산과 가시 돋친 줄기로 기억되는데, 땅두릅은 아내가 사 온 나물과 초장 맛으로 먼저 기억난다.
약초 관련 강의를 들으며 땅두릅이라는 이름을 다시 들었을 때도 그 식탁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이름은 알고 먹어왔지만, 나무 두릅과 땅두릅의 모습이 실제로 어떻게 다른지는 따로 살펴본 적이 없었다. 이름이 비슷하다고 같은 식물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그때 들었다.
요즘도 봄이 되면 아내가 두릅이나 땅두릅을 사 와 살짝 데쳐 줄 때가 있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손쉽게 만나는 나물이지만, 초장에 찍어 먹을 때면 군대 시절 봄 산에서 새순을 따던 장면도 함께 떠오른다. 산에서 직접 만난 나무 두릅과 식탁에서 익숙해진 땅두릅이 서로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다음에 산이나 식물원에 갈 기회가 생기면, 시장에서 먹어본 땅두릅이 실제로 자라는 모습도 천천히 살펴보고 싶다. 식탁에서 본 나물과 땅에서 자라는 식물의 모습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직접 확인한 뒤에 기록해 보는 편이 낫겠다.
산림청 자료에서 본 독활이라는 이름
이름을 찾아보는 과정에서는 땅두릅과 독활이라는 말이 함께 나오는 자료도 확인했다. 산림청의 공개 답변에는 땅두릅을 한방에서 독활이라고 부른다는 설명이 실려 있다. 다만 식물 이름은 비슷한 이름이나 분류가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있어, 이름 하나만으로 눈앞의 식물을 단정하는 일은 조심해야겠다고 느꼈다.
내가 흥미롭게 느낀 것은 어떤 이름이 더 맞는지 결론을 내리는 일이 아니다. 군대 시절에는 그저 두릅이라고 불렀던 봄나물의 기억이 있고, 시간이 지난 뒤에는 땅두릅이라는 이름을 새로 들었다. 이름이 늘어날수록 식물을 더 많이 안다고 하기보다, 내가 아직 직접 보지 못한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료를 읽을 때도 건강에 관한 설명이나 이용법을 따라가기보다, 식물 이름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정도로만 두고 싶다. 실제로 본 나무와 먹어본 새순의 기억,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땅두릅을 구분해 두는 편이 내 기록에는 더 맞다. 책 속 이름은 관찰을 시작하는 단서가 될 수 있지만, 현장에서 본모습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다음 봄에 확인하고 싶은 모습
다음 봄에는 서두르지 않고 한 자리에 서서 식물의 이름표와 주변 모습을 함께 확인해 볼 생각이다. 그날 본 내용을 짧게라도 남겨두면, 기억에만 의지하던 예전과는 다른 기록이 될 것 같다. 사진도 함께 남기려 한다.
다음에 산에 갈 기회가 생기면 나무 두릅의 새순만 찾지 않고, 땅두릅이라고 소개된 식물이 있는지도 천천히 살펴볼 생각이다. 하지만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채취하거나 맛보려 하지는 않겠다. 먼저 안내판이나 믿을 만한 식물 자료를 통해 이름을 확인하고, 전체 모습과 자라는 장소를 눈에 담아두고 싶다.
가능하다면 사진도 남기고 싶다. 멀리서 본 전체 모양, 잎이 달린 자리, 주변의 숲 환경을 따로 기록해 두면 나중에 군대 시절의 두릅나무 기억과 비교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봄마다 두릅을 먹어왔지만, 이제는 식탁 위의 나물뿐 아니라 그 식물이 자라던 자리까지 함께 떠올려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