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기억4 고기 쌈의 깻잎과 밭둑의 보라색 잎 사이에서 만난 차조기 삼겹살을 구워 먹는 날이면 상에는 대개 상추와 깻잎이 함께 올랐다. 나는 그중에서도 향이 진한 깻잎을 유독 좋아했다. 한 장으로는 조금 아쉬워 두세 장을 겹쳐 고기를 싸 먹을 때도 있었다. 고기와 마늘, 쌈장을 올린 뒤 깻잎으로 감싸 먹으면 다른 쌈채소보다 향이 먼저 느껴졌다. 내게 깻잎은 고기를 먹을 때 자연스럽게 곁들이는, 익숙하고 편한 잎이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 밭이나 밭둑에서 들깨와 함께 자라던 보라색 잎은 조금 달랐다. 초록색 들깨 옆에 붉거나 보라색으로 보이는 잎이 나란히 자라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그저 색이 특이한 깻잎쯤으로 생각했다. 나중에야 그 식물이 차조기라고도 하고, 자소엽이라고도 부르는 식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는 이름도 몰랐고, 밭 가장자리에서 초록색 잎과 다른 색을 .. 2026. 9. 14. 손끝에 남던 쑥 향과 떡방앗간의 초록빛 봄이 되면 들과 논두렁마다 어린 쑥이 올라왔다. 시골에서 자랄 때 쑥은 이름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식물이었다. 겨우내 비어 보이던 땅에 낮은 초록빛이 보이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쑥을 캐 오라고 하셨다. 내게 봄은 꽃이 피는 계절이기도 했지만, 바구니를 들고 들로 나가 쑥을 뜯는 계절이기도 했다. 그때의 쑥은 약초나 식물 정보보다 먼저, 어머니의 심부름과 쑥떡으로 이어지는 봄날의 일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쑥을 캐러 나가면 처음에는 심부름보다 놀이에 가까웠다. 누가 더 많이 캐는지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고, 작은 잎이 어느새 한 줌씩 쌓이는 모습을 보며 괜히 뿌듯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쭈그려 앉아 있으면 손가락이 아리고 다리도 저렸다. 그래도 바구니에 쑥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 쉽게 자리를 뜨.. 2026. 9. 10. 할아버지 무덤가의 붉은 열매, 뒤늦게 알게 된 구기자나무 구기자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여러 곳에서 들었다. 누군가는 간이나 눈에 좋다고 말했고, 약초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는 이름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내게 구기자는 약초 이름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무덤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던, 벌초를 할 때마다 아버지가 낫으로 정리하던 나무에 가까웠다. 그때는 그 나무가 무엇인지도, 붉게 익는 열매가 어디에 쓰이는지도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구기자를 꽤 오래전부터 보고 있었던 셈이다. 다만 이름을 몰랐고, 이름을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봉분 주변에 자라던 가지, 벌초하러 갈 때 들고 가던 낫, 가을 밭일을 하며 보았던 붉은 열매, 아버지가 열매를 담금주 병에 넣던 모습이 따로따로 남아 있었다. 약초를 공부한 뒤에야 그 기억들이 모.. 2026. 9. 6. 이웃집 살구나무 아래에서 보낸 여름 살구는 어린 시절의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과일이다. 동네 이웃집마다 살구나무가 몇 그루씩 있었고, 열매가 익는 철이 되면 나무 아래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 됐다. 덜 익은 살구는 입안을 찌르듯 시었고, 햇볕을 충분히 받은 살구는 과즙이 달고 많았다. 지금도 살구가 시장에 나오면 일부러 사 먹는다.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이웃집 나무와 친구들, 여름 햇빛 아래서 살구를 따 먹던 시간이 함께 떠오른다. 살구는 내게 약초보다 먼저 과일이고, 식물 이름보다 먼저 여름날의 맛이다. 과육을 다 먹고 남은 씨앗을 돌로 깨 보던 호기심까지 포함해, 살구에는 어린 시절의 무심한 시간이 담겨 있다. 노란빛 열매 하나가 동네 풍경과 친구의 집, 손에 묻던 과즙을 함께 불러낸다.이웃집 살구나무가 놀이터이던 .. 2026. 8. 1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