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을 구워 먹는 날이면 상에는 대개 상추와 깻잎이 함께 올랐다. 나는 그중에서도 향이 진한 깻잎을 유독 좋아했다. 한 장으로는 조금 아쉬워 두세 장을 겹쳐 고기를 싸 먹을 때도 있었다. 고기와 마늘, 쌈장을 올린 뒤 깻잎으로 감싸 먹으면 다른 쌈채소보다 향이 먼저 느껴졌다. 내게 깻잎은 고기를 먹을 때 자연스럽게 곁들이는, 익숙하고 편한 잎이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 밭이나 밭둑에서 들깨와 함께 자라던 보라색 잎은 조금 달랐다. 초록색 들깨 옆에 붉거나 보라색으로 보이는 잎이 나란히 자라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그저 색이 특이한 깻잎쯤으로 생각했다. 나중에야 그 식물이 차조기라고도 하고, 자소엽이라고도 부르는 식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는 이름도 몰랐고, 밭 가장자리에서 초록색 잎과 다른 색을 띠는 식물로만 보였다.
밭둑의 초록색 들깨와 보라색 잎

어릴 적 밭둑에서 보았던 보라색 잎은 초록색 들깨와 함께 있을 때 더 눈에 띄었다. 초록색 잎 사이에 붉은빛이나 보랏빛이 섞여 있으니, 같은 종류의 식물인지 다른 식물인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당시에는 식물을 구별해 보려는 마음보다, 왜 저쪽 잎만 다른 색인지 궁금해하는 정도였다. 밭에서 자라는 식물은 먹을 수 있는 잎도 있고 그냥 지나치는 풀도 있었지만, 내게 그 보라색 잎은 둘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보라색 잎이 있는 쪽은 자연스럽게 손이 덜 갔다. 초록색 들깻잎은 집에서도 보고, 고기와 함께 먹는 깻잎으로도 익숙했다. 반면 보라색 잎은 향부터 달랐다. 호기심에 생으로 먹어 보면 보통 깻잎보다 향이 훨씬 강했고, 입안을 쏘는 듯한 맛도 느껴졌다. 많이 먹으면 입안이 약간 얼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어린 내게는 그 맛이 낯설었고, 그냥 향이 독한 깻잎 정도로 생각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색과 향만으로도 두 식물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다만 그 차이를 식물 이름이나 분류로 이어 가지는 못했다. 보라색 잎은 맛이 강해 손이 잘 가지 않았고, 초록색 들깻잎은 익숙해서 자연스럽게 골라 먹었다. 밭둑의 식물은 그렇게 내게 초록색 잎과 보라색 잎, 편하게 먹는 잎과 조금 망설이게 되는 잎으로 나뉘어 기억됐다.
독한 깻잎이라고 생각했던 향
차조기를 처음 생으로 먹었을 때의 기억은 맛보다 향이 먼저 남아 있다. 보통 깻잎도 향이 강한 편이지만, 보라색 잎에서는 그보다 더 진하고 자극적인 느낌이 났다. 입안에 넣으면 향이 빠르게 퍼졌고, 뒤에는 쏘는 듯한 맛이 남았다. 어린 마음에는 붉고 보라색인 잎이 왜 이렇게 강한 맛을 내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보라색 잎이 있는 쪽으로는 아예 손을 대지 않고 초록색 들깨 잎만 골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처럼 식물 이름을 검색하거나, 잎의 특징을 비교해 볼 생각도 없었다. 맛이 너무 강하면 그냥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잎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차조기와 자소엽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자, 어릴 적 밭둑에서 맛본 그 강한 향이 다시 떠올랐다.
차조기는 들깨와 닮은 모습 때문에 어린 시절의 나처럼 같은 종류의 깻잎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차조기는 들깨와 가까운 식물이면서도, 보라색을 띠는 잎과 독특한 향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차조기에는 초록색과 보라색 계통이 있으며, 보라색 잎이 특징적인 종류는 자소엽으로도 불린다. 내가 밭둑에서 보았던 것은 정확히 어느 종류인지 지금 확인할 수 없지만, 초록색 들깨 옆에서 보랏빛 잎과 강한 향으로 기억되는 식물이었다.
이름을 알고 나서 다시 떠오른 밭둑
약초를 공부하면서 차조기가 자소엽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린 시절의 보라색 잎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맛이 독한 깻잎이라고만 생각했던 식물이, 나중에는 따로 이름을 가진 식물로 연결됐다. 이름을 안다고 해서 어린 시절의 맛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왜 초록색 들깨와 다른 잎이 함께 자라고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차조기의 잎과 끝가지는 자소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보라색을 뜻하는 ‘자(紫)’가 이름에 들어간다. 그러나 내게 자소엽이라는 이름보다 더 먼저 남아 있는 것은 밭둑에서 본 색의 차이다. 초록색 들깨 옆에 있던 보라색 잎, 손에 뜯어 생으로 맛봤을 때 입안을 쏘는 듯했던 향, 그래서 나중에는 초록색 잎만 골라 먹었던 어린 시절의 선택이 더 또렷하다.
지금도 삼겹살을 먹을 때 깻잎을 여러 장 겹쳐 싸 먹으면, 어린 시절 밭둑에서 보았던 보라색 잎이 가끔 떠오른다. 그때는 그 식물을 그냥 색이 특이한 잡초처럼 지나쳤고, 향이 강해 피했던 잎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차조기라는 이름을 알게 됐다. 내게 차조기는 처음부터 약초로 다가온 식물이 아니라, 초록색 들깨 옆에서 혼자 다른 빛을 띠고 있던 보라색 잎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