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5 텃밭에서 캐낸 긴 우엉 뿌리와 소풍 전날의 김밥 어머니께서 우엉을 캐실 때면 나는 곁에서 뿌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구경하곤 했다. 줄기 가까이의 흙을 조금씩 파내면 굵은 우엉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조금 더 파면 끝이 보일 것 같다가도 다시 흙 아래로 이어졌다. 어린 내 눈에는 땅속에 우엉이 끝없이 묻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엉을 서둘러 잡아당기면 중간에서 부러질 수 있었다. 실제로 뿌리가 끊어지는 날도 있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쉬워하셨다. 그러고는 남은 부분을 찾으려고 다시 흙을 파셨다. 나는 그때 왜 우엉 하나를 캐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잘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밥상에 올라오는 우엉조림 한 접시에도 텃밭에서 흙을 파던 시간이 먼저 들어 있었던 것이다.우엉을 캐던 날의 텃밭집 앞 텃밭에는 우엉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도라지와 가.. 2026. 8. 31. 쑥인 줄 알았던 봄의 천궁, 흰 꽃과 뿌리줄기를 다시 보다 약초를 공부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식물 가운데 하나가 천궁이다. 약초를 배우기 전에도 천궁이라는 이름은 어렴풋이 들어 본 것 같았지만, 실제로 어떤 모습의 식물인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봄에 약초원을 방문했을 때 처음 본 천궁은 생각보다 여리고 작았다. 잎이 갈라진 모양이 쑥이나 익모초를 떠올리게 해서, 길을 가다가 보았다면 그냥 비슷한 풀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 같다. 당시에는 새싹이 올라와 크게 자라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함께 견학을 하던 다른 수강생 한 분도 천궁을 쑥으로 생각했다고 하셔서, 나만 헷갈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안심이 됐다. 집에 돌아온 뒤 자란 천궁의 모습과 흰 꽃 사진을 찾아보면서, 약초원에서 본 작은 새싹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하게.. 2026. 8. 29. 회사 식당 방풍나물과 약초원 방풍이 달랐던 날 회사 식당에서 가끔 방풍나물이 반찬으로 나오면 나는 늘 반가웠다. 특유의 향이 있고, 씁쓸하면서도 입안에 오래 남는 맛이 좋아서 다른 나물보다 먼저 챙겨 먹곤 했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방풍나물이 나오면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나물이 나왔다며 한 마디씩 하곤 했다. 나 역시 그동안 방풍나물이라고 부르니 당연히 약초로 쓰는 방풍과 같은 식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약초원을 방문해 교수님이 실제 방풍을 보여 주며 설명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내가 회사 식당에서 먹던 방풍나물과 약재 방풍이 서로 다른 식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평소 즐겨 먹던 나물의 이름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허탈하기도 했지만, 이름 하나를 제대로 구분하게 된 일이 오히려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회사 식당에서 기다리던 방풍나물.. 2026. 8. 28. 아파트 화단의 대추꽃에서 시작된 오래된 가을 기억 약초를 배우면서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식물과 열매를 다시 보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대추도 그 가운데 하나다. 우리 아파트 화단에는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초여름이 되면 작은 대추꽃이 피고 가을이 오면 빨간 열매가 달린다. 매년 그 앞을 지나면서도 나는 대추가 많이 열렸는지, 아직 푸른 열매인지, 붉게 익었는지 정도만 살폈다. 그런데 약초 공부를 하며 대추가 식물 이름과 생약 이름으로도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화단의 나무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대추꽃을 바라보다 보니 제사상에 올리던 대추, 동네 입구의 큰 대추나무, 친구들과 덜 익은 열매를 따 먹던 어린 시절의 가을도 함께 떠올랐다. 대추나무 한 그루가 내게는 계절의 풍경과 가족의 기억, 오래 전의 맛을 이어 주는 나무가 됐다... 2026. 8. 27. 약초원에서 이름으로 만나고 쌈의 향으로 기억한 당귀 약초를 배우면서 다시 보게 된 식물 가운데 하나가 당귀다. 처음에는 당귀라는 이름이 익숙하면서도 실제 식물의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강의에서 당귀라는 이름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약초원에서 표지판 옆에 자라는 식물을 보며 저것이 당귀구나 하고 눈으로 익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많은 식물을 한꺼번에 배우던 중이라 당귀의 잎과 향까지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약초를 함께 공부하는 지인의 집과 밭을 방문하면서 당귀를 다시 만났다. 밭에는 처음 보는 약초가 많았고, 하나씩 이름을 물으며 걷는 시간이 마치 살아 있는 약초 도감 속을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식사 자리에서 독특한 향이 나는 쌈을 먹고 나서야, 그 잎이 당귀라는 말을 듣고 약초원에서 보았던 식물이 다시 또렷하게 떠.. 2026. 8. 26. 회사 탕비실의 둥굴레차에서 시작된 식물 이야기 회사 탕비실에는 늘 둥굴레차 티백이 놓여 있다. 커피를 마시기에는 조금 늦은 오후나 회의가 길어진 날이면, 나는 뜨거운 물에 티백 하나를 넣고 잠시 기다린다. 물빛이 천천히 변하고 구수한 향이 올라오면 바쁘게 이어지던 업무에서도 잠깐 숨을 돌리는 느낌이 든다. 매일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커피 대신 둥굴레차를 고르는 날이 있다. 그저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차라고 생각해 왔는데, 약초 공부를 하면서 둥굴레도 여러 종류가 있고 식물마다 이름과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층층갈고리둥굴레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평소 티백으로 마시던 둥굴레차와 실제 식물의 모습이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회사의 작은 티백 하나에서 시작된 궁금증은, 식물의 잎과 뿌리줄기, 낯선 이름을 찾아보게 한 계기가 됐다.. 2026. 8. 25. 이전 1 2 3 4 5 6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