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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꽃에서 노란 꽃으로, 두 번 만난 인동덩굴

by jamkkum 2026. 8. 4.

인동초와 금은화라는 이름은 예전부터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이름을 들었다는 것과 실제 식물을 알아본다는 일은 전혀 달랐다. 담벼락이나 둑방을 따라 덩굴이 오르고, 길게 핀 꽃을 보면서도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나간 날이 많았다. 그러다 5월 중순 약초원 현장 견학에서 꽃이 핀 인동덩굴을 직접 보게 됐다. 흰 꽃이 달린 줄기 앞에서 설명을 듣자,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날부터 산책길의 하얀 덩굴꽃을 그냥 배경처럼 보지 않게 됐다. 이름을 몰랐던 식물을 다시 보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낯선 이름이 익숙한 풍경과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박하를 보기 전, 흰 꽃 앞에서

5월 중순, 약초를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약초원을 찾았던 날이었다. 박하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전에 먼저 설명을 들은 식물이 인동초였다. 설명을 듣기 전까지 인동초와 금은화는 내게 이름만 익숙한 식물이었다. 누군가 이야기할 때는 알아듣는 듯했지만, 막상 길가에서 마주치면 바로 알아볼 자신은 없었다. 그날은 마침 꽃이 피는 시기여서 흰 꽃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꽃이 핀 덩굴을 보며 이것이 인동초라는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담벼락이나 둑방 가까이에서 줄기가 다른 식물을 타고 올라가며 길게 꽃을 피우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전에 여러 번 봤던 식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만 그동안 나는 줄기의 이름도, 꽃의 이름도 모르고 지나쳤다. 익숙한 풍경 속 식물을 뒤늦게 알아보는 느낌이었다.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며 식물 앞에 서 있으니,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모습을 몰랐던 시간이 조금 선명해졌다. 식물 이름을 외워도 실제 모습과 연결하지 못하면 길가에서 다시 만나기 어렵다. 반대로 한 번 현장에서 보고 나면, 다음부터는 비슷한 꽃이나 덩굴이 보일 때 자연스럽게 기억을 더듬게 된다. 그날의 인동초가 내게는 그런 식물이었다.

 

흰 꽃만 보았던 점도 기억난다. 꽃이 피는 시기였지만, 그때는 흰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줄기는 주변 식물과 섞여 있었고, 가까이 보기 전에는 어느 덩굴이 어느 쪽으로 이어지는지 바로 알아채기 어려웠다. 꽃이 달린 부분을 따라가며 보니 설명을 듣던 식물이 조금씩 분명해졌다. 사진이나 글로 볼 때와 실제 현장에서 보는 일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하를 보러 이동한 뒤에도 금은화 앞에서 들었던 설명은 남아 있었다. 같은 날 여러 식물을 보았지만, 인동초는 ‘예전에도 봤을지 모르는 덩굴’이라는 점 때문에 더 기억에 남았다. 특별히 먼 곳에서만 만나는 식물이 아니라, 내가 자주 걷는 길의 담장과 둑방에도 있을 수 있는 식물이었다. 그래서 견학이 끝난 뒤에는 이름을 새로 배운 것보다, 주변을 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는 느낌이 컸다.

 

이후 산책을 할 때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덩굴이나 길게 핀 하얀 꽃을 보면 한 번 더 살피게 됐다. 물론 비슷해 보이는 식물을 모두 인동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름을 안다고 서둘러 단정하기보다, 실제로 본모습과 그날의 기억을 비교해 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견학에서 돌아온 뒤에는 식물 이름을 들었다고 해서 곧바로 잘 아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직접 본 장소와 계절을 함께 기억해야 다음 만남에서도 조금 덜 낯설 것 같았다. 그 기억이 다음 관찰의 기준이 됐다.

논 주변 절벽에서 다시 확인한 꽃

흰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금은화
흰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금은화

약초원에서 인동초를 본 뒤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말, 지인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그 지인은 농사를 짓는 논 주변에 절벽이 있고, 그곳에 금은화 꽃이 많이 피었다고 했다. 꽃이 피었을 때 함께 와서 직접 보라는 말을 들었고, 약초를 공부하는 지인 몇 명과 시간을 맞춰 그 집을 찾게 됐다. 현장에서 처음 본 식물을 다시 실제 자라는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반가웠다.

 

논 주변의 절벽은 약초원에서 보았던 정돈된 공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금은화 줄기는 주변 나무와 어울려 위로 올라가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여러 덩굴과 나뭇가지가 겹쳐 보여 어느 줄기가 금은화의 줄기인지 언뜻 구분하기 어려웠다. 줄기만 보고 찾으려 할 때는 더 헷갈렸다. 꽃이 핀 부분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줄기를 따라가며 조금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이날에는 흰색 꽃만이 아니라 노란색이 섞인 꽃도 많이 보였다. 5월 중순 약초원에서 보았던 흰 꽃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노란색이 함께 보이는 모습은 더 또렷하게 남았다. 서울식물원은 인동덩굴의 꽃이 흰색으로 피었다가 차츰 노란색으로 변하는 모습 때문에 금은화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소개한다. 내가 본 두 시기의 꽃 색도 그 설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한 식물의 이름이 색의 변화와 이어진다는 사실은 현장에서 보니 더 쉽게 기억됐다. 약초원에서는 흰 꽃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지인의 논 주변 절벽에서는 흰색과 노란색이 함께 보였다. 같은 식물을 두 번 보았지만, 장소와 시기가 달라지자 인상도 달랐다. 처음에는 이름을 들으며 식물을 봤고, 두 번째에는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을 꽃의 색으로 다시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그날은 약초를 공부하는 지인들과 함께 식물 이야기도 나눴다. 다만 내가 가장 오래 보게 된 것은 꽃이 핀 줄기였다. 주변 나무와 엉켜 올라간 덩굴 사이에서 꽃을 먼저 찾고, 그 꽃이 달린 줄기를 따라보는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 식물의 전체 모습을 한 번에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들어온 꽃 하나에서 시작해 주변의 줄기와 잎을 살피게 됐다.

 

지인이 꽃을 따 보라고 권해 주어 나도 현장에서 꽃을 따 보았다. 이는 어떤 방법을 익히는 자리가 아니라, 약초원에서 보았던 꽃을 실제 자라는 자리에서 다시 확인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손에 든 꽃을 보면서도 흰색과 노란색이 섞인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금은화라는 이름이 글자로만 있을 때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기억된 이유다.

 

돌아오는 길에는 담장이나 둑방에서 본 덩굴꽃이 다시 떠올랐다. 인동초를 정확히 알아보는 일은 앞으로도 더 살펴봐야 할 부분이겠지만, 적어도 꽃의 색과 덩굴이 다른 식물 사이를 따라 올라가는 모습은 기억하게 됐다. 그날의 절벽은 내게 식물 이름을 확인하는 장소가 됐고, 금은화는 한 번의 설명보다 두 번의 관찰로 더 또렷해진 식물이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봤지만, 나는 꽃의 색과 줄기가 얽힌 모습에 가장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문헌의 이름과 산책길의 덩굴

금은화라는 이름을 들으면 이제는 먼저 두 장면이 떠오른다. 하나는 5월 중순 약초원에서 본 흰 꽃이고, 다른 하나는 5월 말 지인의 논 주변 절벽에서 본 흰색과 노란색 꽃이다. 이름을 알기 전에는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덩굴을 한데 묶어 보았다. 하지만 두 번의 현장 경험 뒤에는 꽃이 보이면 줄기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주변 식물과 어떻게 섞여 있는지 살펴보게 됐다.

 

동의보감 탕액편에는 인동이라는 이름의 항목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이 기록을 오늘날의 건강 방법으로 읽기보다, 오래된 문헌에서도 이 식물을 별도의 이름으로 기록해 두었다는 흔적으로만 본다. 내가 현장에서 본 흰색과 노란색의 꽃이 오래된 식물 이름과 이어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문헌을 읽은 뒤에는 이름이 하나만 있는 식물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떠올랐다. 인동초, 인동덩굴, 금은화처럼 서로 연결되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도 실제 꽃을 본 다음에야 조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름을 많이 외우는 것보다, 어느 이름이 어떤 장면에서 기억났는지를 남겨두는 편이 내게는 더 잘 맞는다. 그래서 이 글에서도 문헌 설명을 길게 옮기기보다, 두 번의 관찰을 연결해 주는 정도로만 적어 두려 한다.

 

산책길에서 하얀 덩굴꽃을 볼 때마다 ‘저것이 금은화일까’ 하고 살펴보는 습관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렇다고 꽃만 보고 바로 이름을 붙이지는 않는다. 비슷한 식물이 있을 수 있고, 실제로 확인하지 않은 것을 확정해 말하기는 어렵다. 대신 꽃의 색, 줄기가 올라간 자리, 주변 나무와 섞인 모습처럼 내가 본 단서를 하나씩 기억해 본다. 이전처럼 아무 이름 없는 덩굴로 지나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산책이 됐다.

 

주변 식물을 기록하는 일은 드문 식물만 찾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여러 번 봤을 식물을 어느 날 이름과 함께 다시 만나고, 다른 장소에서 그 모습을 확인하는 과정도 기록이 된다. 인동초는 내게 바로 그런 예다. 약초원에서 설명을 듣기 전에는 이름만 있었고, 지인의 집에 다녀온 뒤에는 꽃 색과 절벽의 덩굴이 함께 남았다.

 

앞으로는 꽃이 피는 시기에 같은 식물을 다시 볼 기회가 생기면, 흰 꽃과 노란 꽃이 어떤 비율로 보이는지 먼저 살펴볼 생각이다. 줄기만으로는 구분이 어려웠던 지인의 절벽도 떠오를 것이다. 다음에는 꽃이 달린 줄기를 따라가면서, 주변의 나무와 덩굴이 어떻게 겹쳐 있는지도 더 천천히 보고 싶다. 직접 본모습과 확인한 기록을 구분해 남기는 방식으로, 인동덩굴이라는 식물 자체를 조금씩 알아가려 한다. 계절과 장소가 달라지면 같은 덩굴도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점도 다음 기록에서 확인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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