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는 약초보다 차로 먼저 익숙한 식물이다. 회사 탕비실에는 둥굴레차 티백이 늘 비치되어 있어, 뜨거운 물만 있으면 누구나 한 잔씩 우려 마실 수 있다. 나도 매일은 아니지만 커피가 부담스러운 오후가 되면 둥굴레차를 찾곤 한다. 구수하면서도 수수한 향이 나고, 긴 회의나 일이 몰린 날에는 티백 하나를 우려 놓고 잠깐 숨을 고르는 시간이 적은 휴식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내게 둥굴레차는 부담 없이 마시는 회사 음료였다. 그런데 약초 공부를 하며 둥굴레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뿌리줄기와 잎, 꽃의 모양에 따라 이름과 기록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늘 마시던 티백 속 이름이 실제 식물의 모습과 이어진다는 사실이 새롭게 느껴졌다. 차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은 익숙했지만, 그 이름 뒤에 어떤 식물이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다.
커피 대신 우려 마시는 오후
회사에서 둥굴레차를 마시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커피를 이미 마신 날이거나, 오후 늦게 진한 맛이 부담스러울 때 자연스럽게 티백을 집게 된다. 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잠시 기다리면 물빛이 옅은 갈색으로 변하고, 구수한 향이 올라온다. 그 향은 화려하지 않지만 조용해서, 복잡한 업무 중간에 마시기 좋다고 느낀다.
회의가 길어지거나 책상 위에 처리할 일이 쌓인 날에도 둥굴레차를 마신다. 티백을 컵 안에서 몇 번 움직이고, 따뜻한 컵을 손에 쥐고 있으면 잠깐 생각을 멈추게 된다. 동료들 가운데에도 커피 대신 둥굴레차를 마시는 사람이 꽤 있다. 다들 대단한 이유보다는 순한 맛과 익숙한 향이 좋아서 마신다는 정도로 이야기한다.
나 역시 둥굴레차를 마시며 특별한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같은 티백이라도 물이 뜨거울 때와 조금 식은 뒤의 향이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었고, 바쁜 날에는 컵을 책상 한쪽에 오래 두었다가 차가 식은 뒤 마시기도 했다. 그런 작은 차이도 내게는 둥굴레차를 기억하게 하는 장면이다. 그저 카페인이 없는 음료를 찾고 싶을 때 마시는 차였다. 그래서 약초 강의에서 둥굴레가 단순히 티백 이름이 아니라 뿌리줄기와 꽃을 가진 식물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평소 사무실에서 마시던 차를 조금 다르게 떠올리게 됐다.
둥굴레와 황정의 이름

강의에서는 둥굴레가 여러 종류로 나뉘고, 종류에 따라 잎과 꽃이 달리는 모습도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동안 둥굴레라는 이름 아래의 식물은 모두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종류는 잎이 층을 이루어 달리고, 꽃도 줄기와 잎겨드랑이에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 흥미로웠다.
자료를 찾아보면 둥굴레는 산과 들의 양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소개되며, 긴 타원형의 잎과 아래로 향해 피는 꽃이 특징으로 설명된다. 뿌리줄기의 둥근 마디에서 둥굴레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평소 티백에서 보던 이름이 땅속의 뿌리줄기와 잎, 꽃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조금 신기했다.
교수님은 층층둥굴레와 황정이라는 이름도 함께 말씀하셨다. 나는 처음에 황정이 둥굴레와 전혀 다른 식물의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관련 자료를 읽으며, 둥굴레속 식물의 뿌리줄기와 황정이라는 이름이 이어져 설명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식물 이름과 약재 이름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한 줄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다만 내가 실제로 본 것은 회사에서 마신 둥굴레차와 강의 자료 속 설명뿐이다. 층층둥굴레의 잎이 어떻게 층을 이루는지, 꽃이 뭉쳐 피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자료에서 읽은 특징을 내 관찰처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름을 알게 된 뒤에는 언젠가 식물원이나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실제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백의 갈색 물빛만 보던 때와 달리, 이제는 잎이 어느 방향으로 달리고 꽃이 어떻게 매달리는지 궁금해졌다.
익숙한 티백 뒤의 식물
약초 공부를 하며 둥굴레차를 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티백을 뜨거운 물에 넣고 향이 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는 둥굴레라는 이름을 들으면 회사 탕비실의 컵뿐 아니라, 산과 들에서 자라는 잎과 꽃, 땅속에서 이어지는 뿌리줄기까지 함께 떠오른다.
층층둥굴레의 뿌리줄기와 황정이라는 이름을 들었다고 해서, 그것을 따로 구매해 달여 마셔 볼 생각을 바로 세우지는 않는다. 같은 둥굴레속 식물이라도 종류와 제품의 성분, 사용 목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새 재료를 찾는 일보다, 지금 마시는 둥굴레차도 어떤 식물에서 온 이름인지 천천히 알아가는 일에 가깝다. 회사에서 마시는 둥굴레차 한 잔과 자료에서 읽은 황정이라는 이름 사이에는 아직 내가 직접 보지 못한 식물의 시간이 남아 있다.
둥굴레는 내게 구수한 티백 차의 향, 회의 사이에 잠깐 쉬던 오후, 그리고 황정이라는 낯선 이름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식물이다. 늘 가까이 있던 차 한 잔이 실제 식물의 모습과 연결되자, 회사 탕비실의 작은 컵도 전보다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됐다. 약초를 공부하며 알게 된 것은 특별한 것을 찾아야만 새로운 기억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늘 마시던 차에도 아직 모르는 식물의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