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형수님 친정의 매실청에서 아파트 정원의 봄꽃까지

by jamkkum 2026. 10. 12.

매실을 떠올리면 열매보다 먼저 식탁에 놓였던 매실 장아찌와 짙은 색의 매실청이 생각난다. 나는 매실청이나 매실주를 직접 담가 본 적은 없지만, 마셔 본 경험은 여러 번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가까운 기억은 결혼 전 형님과 함께 살던 시절이다. 형수님 친정에서 매실청과 장아찌를 담아 보내주셨고, 우리는 식사할 때 그것을 꺼내 먹곤 했다. 누군가 정성 들여 준비해 보내준 먹거리였다는 점 때문에, 지금도 매실이라는 이름에는 그때의 집과 식탁이 함께 따라온다.

 

노랗게 익은 매실
노랗게 익은 매실

당시에는 매실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봄에 어떤 꽃을 피우는지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매실은 고기 옆에 놓이는 장아찌이거나 물에 타서 마시는 달고 새콤한 음료였다. 시간이 흐른 뒤 주변 아파트 정원에서 매실나무를 보고, 약초 공부를 하며 그 이름을 다시 들으니 식탁의 기억과 봄꽃의 모습이 조금씩 이어졌다. 익숙한 먹거리 뒤에 실제 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생각하게 된 셈이다.

고기 옆에 놓이던 매실 장아찌

형님과 함께 살 때 형수님 친정에서 보내주신 장아찌는 고기를 먹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반찬이었다. 삼겹살이나 수육처럼 기름진 고기와 함께 먹으면 매실의 새콤한 맛이 입안에 또렷하게 남았다. 고기의 맛이 이어지다가 장아찌를 한입 먹으면 다른 맛으로 바뀌는 느낌이 좋았다. 내게는 고기를 먹는 중간에 입맛을 바꾸어 주는 반찬에 가까웠다.

 

특히 삼겹살을 먹을 때는 매실 장아찌 쪽으로 자주 손이 갔다. 짭짤하고 기름진 맛 사이에서 새콤함이 느껴지면, 다음 한입을 조금 다른 기분으로 먹게 됐다. 수육과 곁들일 때도 비슷했다. 매실 자체의 맛만 따로 평가하기보다, 고기와 함께 놓였을 때 잘 어울린다는 인상이 남았다. 그래서 장아찌를 보면 매실 열매의 모양보다 먼저 그 시절 고기반찬이 있던 식탁을 떠올린다.

 

나는 그 장아찌를 만드는 과정을 보지 못했다. 어떤 매실을 골랐는지, 얼마나 오래 두었는지, 어떤 재료를 넣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내게 남은 것은 완성된 장아찌를 받아 식사 때 함께 먹었던 경험이다. 직접 담그는 사람에게는 준비와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을 텐데, 당시의 나는 맛있게 먹는 일에 더 익숙했다. 지금 돌아보면 보내주신 음식 하나에 내가 보지 못한 수고가 들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실청도 기억에 남는다. 형수님 친정에서 보내주신 것은 색깔부터 짙고 깊어 보였다. 나중에 시중의 매실 음료를 마셨을 때도 그 색을 떠올리며 다른 인상이라고 느끼곤 했다. 다만 색이 진하다고 해서 만드는 방식이나 재료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때의 내 눈에 집에서 보내주신 매실청이 유난히 짙게 보였다는 개인적인 기억으로 남겨 두고 싶다.

살구나무와 헷갈렸던 정원의 나무

매실나무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근처 아파트 정원에도 한 그루가 있어, 봄이 되면 일찍 꽃을 피우는 모습을 해마다 보았다. 아직 주변 풍경이 겨울의 흔적을 남기고 있을 때 꽃이 보이면 그 나무 앞에서 시선이 잠시 멈췄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매실나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한동안 살구나무와 헷갈렸다.

 

비슷한 시기에 꽃이 피는 나무를 보면 어느 것이 매실나무이고 어느 것이 살구나무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았다. 꽃이 예쁘다는 인상은 남았지만, 꽃잎이나 꽃받침을 자세히 살피지는 않았다. 주변에도 두 나무를 헷갈려하는 분들이 있어, 나만 이름을 모르는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당시에는 꽃이 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중에 그 나무에 열매가 달리고서야 매실나무라고 받아들이게 됐다. 이름을 알고 난 뒤에는 같은 자리를 지날 때 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꽃이 피면 꽃잎 모양과 꽃받침을 전보다 유심히 들여다보게 됐다. 예전에는 멀리서 꽃의 색만 보았다면, 이제는 가까운 부분을 조금 더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다만 그 관찰만으로 다른 나무까지 정확히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원의 나무를 보는 일은 식탁에서 매실을 만나는 일과 느낌이 다르다. 장아찌와 매실청은 이미 손질과 기다림을 거쳐 내 앞에 놓인 먹거리다. 반면 정원의 나무는 꽃과 잎, 열매가 달리는 모습을 보여 준다. 꽃을 보던 자리에서 나중에 열매를 발견하면, 내가 마셨던 매실청의 시작이 저런 나무에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따로 기억하던 두 장면이 이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결된다.

여행지에서 고른 매실청의 맛

이후에는 시중에 나와 있는 매실 음료를 사 마시기도 했고, 지방 여행 중 로컬푸드점에서 매실청을 사 오기도 했다. 익숙한 이름의 제품이라도 여행지에서 만나면 조금 더 관심이 갔다. 형수님 친정에서 보내주셨던 매실청이 생각나기도 하고, 이곳에서 파는 것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 마실 때에는 함께 다녀온 여행의 분위기도 떠올랐다.

 

여러 제품을 마셔 보니 단맛과 새콤한 맛의 인상이 조금씩 달랐다. 어떤 것은 단맛이 먼저 느껴졌고, 어떤 것은 새콤함이 더 또렷하게 남았다. 색이 짙어 보이는 것도 있고 비교적 옅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나는 그 차이가 지역의 특징인지, 제품의 재료나 만드는 방식 때문인지까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 입에 더 잘 맞는 맛이 무엇인지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숙성 기간이나 당도에 관한 설명을 만나면, 눈앞의 매실청 뒤에 얼마나 긴 준비 시간이 있었을지 생각하게 됐다. 직접 담가 본 적이 없으니 그 과정을 내 경험처럼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내가 아는 것은 완성된 매실청의 색과 맛이다. 누군가에게는 손질하고 기다린 결과물이지만, 내게는 여행 중 고르고 집에 돌아와 마신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매실청은 주로 식사를 마친 뒤 물에 타서 마셨다. 달고 새콤한 맛을 느끼며 식사를 마무리하던 시간이 익숙하다. 예전에는 매실을 어떤 쓰임과 연결해 생각했지만, 지금 글에 남기고 싶은 것은 마신 뒤의 몸 상태가 아니라 맛과 장소의 기억이다. 집에서 보내주신 매실청, 가게에서 산 음료, 여행지에서 가져온 한 병은 같은 매실이라는 이름을 갖고도 각기 다른 장면으로 남았다.

먹거리의 이름에서 나무의 기억으로

약초 공부를 하며 매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낯선 재료를 새로 배운다는 느낌보다는 이미 알고 있던 먹거리를 다시 보는 기분이 들었다. 형수님 친정에서 보내주신 장아찌와 매실청이 먼저 생각났고, 이어서 아파트 정원에서 보던 꽃이 떠올랐다. 늘 접하면서도 그 이름과 나무의 모습을 함께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재미있었다.

 

내가 매실을 알게 된 순서는 꽃에서 열매로 이어지는 나무의 순서와 달랐다. 먼저 장아찌와 매실청으로 만났고, 나중에 봄꽃을 보며 나무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래서 매실을 떠올리면 한 계절만 생각나지 않는다. 결혼 전 형님과 살던 집의 식탁, 여행지의 로컬푸드점, 살구나무인지 헷갈리며 바라보던 정원이 함께 이어진다.

 

다음 봄에 그 나무 앞을 지나면 꽃잎과 꽃받침을 한 번 더 보게 될 것 같다. 꽃을 바라보다가 고기 옆에 놓였던 장아찌나 짙은 매실청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매실은 내게 특별한 설명이 있어야 가까워지는 열매가 아니다. 누군가 보내준 음식의 정성과 여행에서 고른 맛,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피는 꽃을 함께 기억하게 하는 나무의 이름이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