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하천 산책로를 걸을 때면 길 가장자리에는 계절마다 다른 풀과 꽃이 자랐다. 그중 봄부터 여름까지 가장 눈에 잘 들어오던 것은 노란 꽃을 피운 풀무리였다. 산책로 가까이에 모여 자라며 노랗게 물든 모습은 멀리서도 쉽게 보였다. 당시의 나는 그 꽃을 그저 예쁜 노란 들꽃 정도로만 생각했고, 이름을 알아볼 마음까지는 내지 않았다.
이른 아침 산책을 나가면 이슬을 머금은 노란 꽃송이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길가에 흔히 있는 풀이라도 아침빛을 받으면 조금 다르게 보일 때가 있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몇 번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예전에는 산책하다 찍은 흔한 들풀 사진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약초를 공부하면서 그 꽃의 이름이 애기똥풀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사진 속 노란 꽃도 이전과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산책로 가장자리를 따라 피던 노란 꽃

애기똥풀을 처음 본 곳은 특별한 약초원이 아니라 늘 걷던 산책길이었다. 가까운 하천 주변에도 있었고, 산길을 걸을 때도 노란 꽃이 군락을 이룬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봄부터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면 산책로 가장자리에 노란 꽃이 이어졌고, 길을 걷는 동안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물렀다. 꽃이 화려하게 크거나 눈에 띄게 높은 식물은 아니었지만, 여러 포기가 모이면 길가가 노란빛으로 채워졌다.
그때는 이름을 몰랐기 때문에 그 꽃을 다른 식물과 구별하려고 한 적도 없다. 산책길에는 늘 여러 풀이 함께 자라고 있었고, 노란 꽃은 그 가운데 하나였다. 꽃을 보고 지나가고, 가끔 사진을 찍고, 다음 계절에는 또 다른 풀들이 자라면 자연스럽게 잊는 정도였다. 내게는 식물의 특징보다 산책길에서 잠깐 눈을 즐겁게 하는 색이 더 중요했다.
특히 아침 산책을 할 때의 모습이 기억난다. 이슬을 머금은 꽃송이는 햇빛이 닿기 전에도 작은 물방울을 품고 있었고, 노란빛은 풀숲의 초록색 사이에서 더 또렷하게 보였다. 같은 길을 여러 번 걸어도 꽃이 피어 있는 계절에는 산책로가 조금 달라 보였다. 그때 찍어 둔 사진들에는 꽃 이름은 없었지만, 내가 그 노란 꽃 앞에서 잠시 멈췄던 시간은 남아 있었다.
이름을 알고 나서 달라진 사진
약초를 공부하면서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먼저 떠오른 것은 하천 산책로에서 보던 노란 꽃무리였다. 이름을 들은 뒤에는 내가 예전에 찍어 둔 사진을 다시 보게 됐다. 전에는 길가의 흔한 들꽃으로만 보였던 꽃이었는데, 이제는 이름을 알고 보는 식물이 됐다. 사진 속 꽃은 바뀌지 않았지만, 내가 사진을 바라보는 방식은 달라졌다.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은 줄기를 꺾으면 노란 즙이 나온다는 설명과 함께 들었다. 나는 직접 줄기를 꺾어 확인해 본 적은 없다. 여러 번 그 앞을 지나갔으면서도 그런 특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꽃만 보고 지나간 식물에 줄기와 즙에 관한 이야기가 더해지자, 예전의 산책길이 조금 새롭게 느껴졌다. 내가 보았던 것은 노란 꽃뿐이었지만, 그 식물에는 꽃 이외에도 여러 특징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이름을 알게 된 뒤에도 산책길에서 애기똥풀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여전히 노란 꽃이다. 줄기의 특징을 들었다고 해서 꽃을 바라보는 기억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전처럼 이름 모를 꽃으로 지나치지는 않게 됐다. 사진 속 노란 꽃, 하천변의 풀숲, 이른 아침 이슬이 남아 있던 꽃송이가 애기똥풀이라는 이름과 함께 하나의 기억으로 묶이게 됐다.
가까운 길에서 다시 만나는 식물
애기똥풀은 멀리 있는 특별한 식물이 아니라, 내가 산책을 하며 여러 번 지나친 길가의 식물이었다. 이름을 모르던 시절에도 꽃이 피면 눈이 즐거웠고, 사진을 찍을 만큼 잠시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그 관심은 꽃의 색에 머물렀다. 이제는 그 노란 꽃이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산책길에서 다시 마주치면 한 번 더 바라보게 된다.
예전 같으면 흔한 들풀 사진 한 장으로 남았을 꽃이, 지금은 내가 이름을 뒤늦게 알게 된 식물의 기록이 됐다. 식물 공부를 하면서 이전에 보았던 풍경이 달라 보이는 순간이 있다. 새로 생긴 산책로를 찾거나 먼 곳의 식물을 만나서가 아니라, 늘 지나던 길에 있던 식물의 이름을 알게 될 때 그런 변화가 더 크게 느껴진다.
다음에 하천 산책로에서 노란 꽃무리를 다시 만나면, 나는 아마 사진을 한 장 더 찍을 것이다. 예전처럼 그저 예쁜 노란 꽃이라 생각하며 찍는 사진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꽃 하나를 다 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봄부터 여름까지 산책길 가장자리를 노랗게 만들던 그 풀무리가, 이제는 애기똥풀이라는 이름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내게 애기똥풀은 약초 이름보다 먼저,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고 반짝이던 하천 산책로의 노란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