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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캐낸 긴 우엉 뿌리와 소풍 전날의 김밥

by jamkkum 2026. 8. 31.

봄철 잎이 무성하게 자란 우엉
봄철 잎이 무성하게 자란 우엉

어머니께서 우엉을 캐실 때면 나는 곁에서 뿌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구경하곤 했다. 줄기 가까이의 흙을 조금씩 파내면 굵은 우엉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조금 더 파면 끝이 보일 것 같다가도 다시 흙 아래로 이어졌다. 어린 내 눈에는 땅속에 우엉이 끝없이 묻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엉을 서둘러 잡아당기면 중간에서 부러질 수 있었다. 실제로 뿌리가 끊어지는 날도 있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쉬워하셨다. 그러고는 남은 부분을 찾으려고 다시 흙을 파셨다. 나는 그때 왜 우엉 하나를 캐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잘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밥상에 올라오는 우엉조림 한 접시에도 텃밭에서 흙을 파던 시간이 먼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우엉을 캐던 날의 텃밭

집 앞 텃밭에는 우엉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도라지와 가지, 오이, 애호박, 부추, 대파, 상추, 들깨, 차조기까지 계절에 따라 여러 식물이 자랐다. 어머니는 밭을 둘러보며 필요한 것을 따 오셨고, 그날 가져온 재료는 저녁 반찬이 되거나 다음 날 먹을 음식에 들어갔다.

 

상추는 잎을 따서 바로 쌈으로 먹을 수 있었고, 부추는 베어와 부침개나 무침에 쓰였다. 오이와 애호박은 어느 날 보면 전보다 훌쩍 커져 있었고, 가지는 보랏빛 열매를 달았다. 하지만 우엉은 다른 채소와 달랐다. 땅 위에서 보이는 잎보다 흙 속의 뿌리가 더 궁금한 식물이었다.

 

흙에서 막 나온 우엉은 마트에서 보는 것처럼 반듯하지 않았다. 표면에는 흙이 묻어 있었고, 길이와 굵기도 제각각이었다. 곧게 뻗은 것도 있었지만 옆으로 휘거나 모양이 고르지 않은 것도 있었다. 어머니는 캐 온 우엉을 들고 와 물에 씻고 흙을 털어 내며 손질하셨다.

 

어릴 때 나는 우엉이 왜 그렇게 길게 자라는지 궁금했다. 다른 채소처럼 잎이나 열매를 바로 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땅속을 오래 파야 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지금도 우엉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식물 이름이나 설명이 아니라, 호미로 흙을 파고 긴 뿌리를 조심스럽게 꺼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다.

 

우엉을 캐던 날의 텃밭에는 다른 식물의 모습도 함께 남아 있다. 바람에 흔들리던 상추, 낮게 모여 있던 부추, 손으로 스치면 향이 나던 들깨와 차조기 잎이 기억난다. 그 사이에서 우엉은 겉으로는 조용히 자라다가, 캐내는 순간에야 제 긴 뿌리를 보여 주는 채소였다.

소풍 전날 부엌에서

우엉을 떠올리면 학교 소풍 전날의 부엌도 함께 생각난다. 소풍 날짜가 정해지면 나는 며칠 전부터 들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친구들과 무엇을 할지 이야기하며 다음 날만 기다렸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소풍 전날은 도시락을 준비하는 날이었다.

 

어머니는 텃밭에서 우엉을 캐 오시고, 동네 앞 시냇가 주변에 자라던 미나리도 뜯어 오셨다. 지금 생각하면 김밥 속에 들어간 재료 가운데에는 전날 밭과 시냇가에서 온 것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밭에서 가져온 재료가 부엌으로 들어오고, 그것이 반찬이나 김밥이 되는 일이 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우엉은 길게 썰어 조림으로 만들어졌다. 부엌에서는 조림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고, 나는 다음 날 들고 갈 도시락을 생각하며 자꾸 부엌 근처를 서성였다. 김밥 속에 들어갈 우엉조림은 완성되기 전부터 맛있어 보였다.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빛깔을 보고 있으면 한 조각만 먹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가 잠시 다른 일을 하실 때 우엉조림을 하나 집어 먹다가 혼난 기억도 있다. 처음에는 한 조각만 먹으려 했는데, 맛있어서 또 손이 갔다. 지금 생각하면 소풍날 김밥에 넣을 반찬을 몰래 집어 먹고 있던 셈이다. 그때는 들킨 것이 아쉬웠지만, 지금은 그 장면도 웃음이 나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어머니는 김밥을 말아 도시락통에 담아 주셨다. 밥과 계란, 단무지, 우엉조림, 채소가 들어간 김밥을 들고 소풍을 갔다. 도시락을 열면 친구들끼리 서로의 반찬을 구경하기도 했고, 나는 김밥 속에서 씹히는 우엉조림을 좋아했다. 소풍지에서 먹은 김밥이 특별했던 이유는 그 안에 어머니가 전날부터 준비한 시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트 우엉을 볼 때마다

지금은 마트에 가면 손질된 우엉을 쉽게 살 수 있다. 껍질을 벗긴 우엉도 있고, 일정한 길이로 잘라 놓은 우엉도 있다. 김밥용으로 조리된 우엉도 편리하게 살 수 있어서, 예전처럼 텃밭에서 캐고 씻고 손질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마트에 진열된 우엉은 깨끗하고 가지런하다. 하지만 포장 안의 우엉을 보면 흙이 묻은 긴 뿌리와 어머니의 손이 함께 떠오른다. 텃밭에서 막 캐낸 우엉은 모양이 제각각이었고, 표면에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흙빛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물로 여러 번 씻고 껍질을 손질한 뒤에야 우엉을 반찬으로 만드셨다.

 

지금의 우엉도 편리하고 맛있다. 다만 우엉조림이 들어간 김밥을 먹거나 마트에서 손질된 우엉을 볼 때면, 소풍 전날의 부엌이 먼저 생각난다. 다음 날 아침을 위해 우엉조림을 만들던 냄새, 몰래 한 조각을 집어 먹던 일, 도시락통을 들고 소풍을 기다리던 마음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우엉은 내게 특별한 식물 정보보다 어머니의 텃밭과 더 가까운 채소다. 흙 속에서 길게 이어지던 뿌리, 중간에 부러지면 다시 흙을 파시던 어머니, 소풍 전날 우엉조림을 만들던 부엌이 모두 우엉이라는 이름 안에 남아 있다. 그래서 지금도 김밥 속 우엉 한 조각을 보면, 오래전 텃밭의 흙냄새가 먼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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