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를 공부하다 보면, 예전에 그냥 지나쳤던 어른들의 말이 뒤늦게 또렷해지는 때가 있다. 우슬이 내게는 그런 식물이다. 10년쯤 전, 우슬과 닭발이 무릎 통증에 좋다는 말을 듣고 우슬과 우슬엿을 사서 어머니께 드린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이름 있는 한약재상에 급하게 주문했을 뿐, 우슬이 어떤 식물인지도 정확히 몰랐고 어떻게 손질하거나 먹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어머니께서는 그때 우슬을 굳이 돈 주고 살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논두렁이나 밭두렁, 길가에 지천으로 난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이번에 약초 공부를 하며 우슬의 씨앗이 사람의 옷이나 동물의 털에 붙어 이동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어머니의 말이 젊은 시절 밭일을 하며 얻은 살아 있는 관찰이었음을 새삼 알게 됐다.
급하게 사서 드렸던 우슬
당시 나는 우슬과 닭발을 함께 넣어 삶아 먹으면 된다는 말만 들었다. 정확한 조리법이나 레시피는 알지 못한 채, 우슬 재료와 우슬로 만든 엿을 어머니께 전해드렸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 엿은 조금 드셨던 기억이 나지만, 우슬을 실제로 드셨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지금 생각하면 재료만 덜렁 사다 드린 것이 다소 성의 없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생각해 무언가 해드리고 싶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충분히 살피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우슬이라는 이름을 무릎과 연결된 재료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그 이름 뒤에 실제 식물이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다.
이번에 다시 떠올려 보니, 그 경험에서 남는 것은 어떤 결과가 아니라 어머니께 무언가를 챙겨드리고 싶었던 마음과 급하게 주문했던 시간이다. 지금은 건강 상태에 따라 식품이나 한약재를 이용하기보다 의료진 또는 약사와 먼저 상의하는 편이 낫다는 점도 생각하게 된다. 우슬을 다시 찾게 된다면, 예전처럼 이름만 듣고 구매하기보다 식물과 제품의 정보를 먼저 살피게 될 것 같다.
밭두렁에 있던 쇠무릎

어머니께서는 우슬이 논두렁이나 밭두렁, 길가에 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지만, 약초 공부를 하면서 그 말이 떠올랐다. 우슬로 불리는 쇠무릎은 줄기의 마디가 소의 무릎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름 자체가 식물의 생김새를 알려 주는 셈이다.
또 쇠무릎의 열매는 옷감이나 동물의 털에 잘 붙어 이동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고 소개된다. 사람과 동물이 오가는 논두렁과 밭두렁, 길가에서 자주 보인다는 어머니의 말도 이런 생태와 이어져 보인다. 나는 어릴 적 우슬의 이름이나 열매를 따로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밭일을 오래 한 어머니에게는 이미 눈에 익은 식물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들었을 때 왜 그런지 묻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밭두렁의 풀과 길가의 식물을 오래 보아 온 사람이 가진 지식은 책에서 읽은 내용과 다른 결이 있다. 이름을 외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어느 자리에 잘 보이는지와 옷에 무엇이 붙는지를 생활 속에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을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았던 일이 조금 미안하게 남는다.
우슬이라는 이름을 알고 난 뒤에는, 줄기 마디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풀을 보더라도 예전보다 한 번 더 살피게 될 것 같다. 그렇다고 길가의 식물을 뽑아 우슬이라고 단정하거나 채취하지는 않으려 한다. 내게 우슬은 직접 이용할 재료라기보다, 어머니의 밭두렁 이야기가 뒤늦게 이해된 식물로 남아 있다.
이름 하나가 남긴 마음
약초 공부는 흔한 풀과 나무에 새 이름을 붙이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어린 시절 보았던 풍경과 어머니가 무심하게 건넨 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슬도 내게는 무릎을 닮은 마디를 가진 식물이라는 설명보다, “밭두렁에 지천으로 있다”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됐다.
예전에는 직접 캐서 달여드리거나 더 편하게 드실 수 있도록 손질해드렸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든다. 하지만 그 아쉬움을 지금 다시 채취하거나 달이는 행동으로 옮기려 하지는 않는다. 어머니가 알고 계셨던 밭의 식물을 기억하고, 건강과 관련된 선택은 충분히 확인한 뒤 신중하게 하는 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슬은 내게 한약재상에서 급하게 주문했던 봉지와 작은 엿의 기억, 논두렁과 밭두렁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그리고 익숙한 풍경 속 식물을 오래 보아 온 어머니의 경험을 뒤늦게 이해하게 한 식물이기도 하다. 약초를 공부하며 생긴 변화는 어떤 식물을 쉽게 활용하는 법을 알게 된 데 있지 않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말과 풍경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된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