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에서 들은 산사나무 이야기

산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나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강의에서는 산사가 쓰이는 식물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정원수로도 많이 심는다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산사라는 이름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특별한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이 아니라, 평소 내가 지나던 아파트 단지 안에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강의를 들을 때까지 내게 산사는 이름만 낯익은 식물에 가까웠다. 나무의 모습이나 열매가 달리는 계절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정원수라는 말을 듣자 주변을 다시 둘러보고 싶어졌다. 아파트 단지 안에는 나무와 화초가 많지만, 대부분은 이름을 모르고 지나간다. 꽃이 피는 때가 아니면 한 종류의 조경수처럼 보일 때도 많다.
그 뒤로 동네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 나무를 조금 더 유심히 보게 됐다. 평소에는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데만 신경을 썼는데, 강의에서 들은 이름 하나가 남아 있으니 시선이 달라졌다. 산사나무가 정말 주변에 있을까 싶어 가지와 열매를 살펴봤다. 나무 이름을 알고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비슷해 보이는 나무도 많았고, 계절에 따라 모습도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전처럼 조경을 한 덩어리로 보지는 않게 됐다. 어느 나무에는 열매가 남아 있고, 어느 나무는 잎이 먼저 떨어져 있었다. 같은 단지 안에서도 계절을 보내는 모습이 조금씩 달랐다. 산사를 찾기 위해 보기 시작한 나무들이었지만, 결국에는 주변 식물 전체를 다시 보게 됐다.
낙엽 뒤에 남은 붉은 열매
늦가을 무렵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붉은 산사 열매를 봤다. 낙엽이 많이 진 뒤였는데도 가지에는 열매가 오랫동안 달려 있었다. 잎이 무성한 계절에는 지나쳤을 나무였을 텐데, 주변이 한결 비어 보이는 때가 되니 붉은 열매가 더 눈에 띄었다.
바닥에도 열매가 떨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 가까운 곳이었지만, 나는 잠시 걸음을 늦췄다. 강의에서 들은 산사라는 이름이 그때 떠올랐다. 평소라면 가을에 떨어진 열매 가운데 하나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름을 알고 난 뒤에 보니, 그 열매가 달린 나무와 바닥에 남은 흔적을 함께 보게 됐다.
특히 낙엽이 다 떨어지고도 열매가 가지에 남아 있던 모습이 기억난다. 잎이 있을 때는 나무의 전체 색이 초록으로 이어졌을 텐데, 늦가을에는 가지와 붉은 열매가 더 또렷하게 보였다. 계절이 바뀌면서 같은 나무의 인상도 크게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매가 남아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 보였던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날 이후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면 비슷한 붉은 열매가 보일 때 한 번 더 나무를 올려다보게 됐다. 산사나무인지 바로 단정하지는 않으려 한다. 다만 내가 본 나무와 열매의 모습은 기억해 두고 싶었다. 이름을 확인하는 일과, 실제로 본 장면을 기록하는 일은 조금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정원수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특별한 식물원에 가지 않아도 아파트 단지와 길가에서 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사나무를 찾으며 걷던 날에는 붉은 열매뿐 아니라 바닥에 쌓인 낙엽, 비어 보이는 가지, 화단 가장자리의 다른 식물까지 함께 보게 됐다.
5월 월정사에서 만난 산사나무
작년 5월에는 아내와 함께 강원도 평창의 월정사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산사나무가 있는 것도 직접 봤다. 이미 산사라는 이름을 강의에서 들은 뒤였기에, 여행지에서 그 나무를 봤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번 더 살펴보게 됐다. 동네 아파트에서 찾던 나무와 여행지에서 만난 나무가 같은 이름으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5월이면 꽃이 피어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월정사에서 본 산사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았다. 평창은 기온이 낮은 지역이라 그런지 내가 생각한 5월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꽃을 보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기억에 남았다. 같은 달이라도 장소가 달라지면 식물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본 셈이다.
그때는 산사나무의 꽃을 보지 못한 아쉬움도 조금 있었다. 하지만 꽃이 없었기 때문에 나무의 가지와 전체적인 모습을 더 살펴봤던 것 같다. 꽃이나 열매가 있을 때는 그 부분에 먼저 눈이 가는데,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는 시기에는 나무 자체를 보게 된다. 월정사에서 본 산사나무는 그런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내와 함께 방문했던 장소라는 점도 그 나무를 더 또렷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절의 풍경이나 걸었던 길만 떠올릴 줄 알았는데, 산사나무도 한 장면으로 남았다. 강의에서 들었던 이름, 동네에서 봤던 붉은 열매, 월정사에서 꽃 없이 서 있던 나무가 차례로 연결됐다.
같은 산사나무라도 내가 본모습은 모두 달랐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늦가을 열매가 먼저 기억났고, 월정사에서는 5월인데도 꽃이 피지 않았던 나무가 기억났다. 한 식물을 한 번 보고 끝내는 것보다, 서로 다른 장소와 계절에서 다시 보는 일이 이름을 기억하는 데 더 도움이 되는 듯했다.
문헌의 이름과 다음 관찰
산사나무를 보고 난 뒤에는 예전 문헌에도 산사라는 이름이 남아 있는지 찾아보게 됐다. 동의보감에는 산사라는 이름이 실려 있다고 한다. 오래된 문헌 속 식물 이름과, 내가 아파트 단지와 월정사에서 본 나무가 이어진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문헌을 읽을 때는 그 내용을 지금의 생활에 그대로 옮기기보다, 식물 이름이 오래전부터 기록돼 왔다는 점을 살펴보는 정도로 보려 한다. 내가 관심을 두는 부분도 산사나무가 무엇에 쓰였는가 보다, 평소 지나던 정원수가 문헌 속 이름을 가진 식물이라는 사실이다. 기록 속 이름을 알고 나면 현실의 나무를 볼 때 조금 더 오래 시선이 머문다.
다음 늦가을에는 아파트 단지에서 봤던 산사나무를 다시 찾아볼 생각이다. 올해도 열매가 같은 자리에서 보이는지, 낙엽이 진 뒤에는 나무가 어떤 모습으로 남는지 살펴보고 싶다. 바닥에 떨어진 열매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지에 남은 열매와 나무 전체의 모양도 함께 기록해 볼 생각이다.
기회가 된다면 꽃이 피는 시기의 산사나무도 보고 싶다. 월정사에서 보지 못했던 꽃을 다른 장소나 다른 계절에는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산사나무를 특별한 목적을 가진 식물로 보기보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주변의 나무로 기억해 두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