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는 어린 시절부터 식탁에서 가장 익숙하게 만나던 채소 가운데 하나였다. 어머니는 앞밭에 부추와 도라지, 우엉, 가지, 오이, 대파, 상추를 함께 심어 기르셨다. 밭에서 갓 뜯어온 채소는 계절마다 반찬이 되어 식탁에 올랐다. 그 가운데 부추는 특별히 눈에 띄는 작물이라기보다, 필요할 때마다 베어와 무침으로 만들고 전으로 부쳐 먹는 익숙한 잎이었다.
지금도 아내가 부추전을 부쳐 주는 날이면 어린 시절 집 부엌이 먼저 떠오른다. 밀가루 반죽에 부추를 듬뿍 넣고, 팬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지져내면 부추 향이 집안에 퍼졌다. 그 냄새를 맡으면 식사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부추무침과 부추전, 추어탕이나 고기를 먹을 때 곁들여 먹던 부추는 모두 다른 음식이었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앞밭에서 바로 뜯어 온 초록빛 잎으로 이어져 있다.
앞밭에서 식탁으로 오던 부추

어머니의 앞밭에는 여러 채소가 함께 자랐다. 도라지와 우엉처럼 뿌리를 기다려야 하는 작물도 있었고, 가지와 오이처럼 열매가 달리기를 기다리는 작물도 있었다. 부추는 그들과 조금 달랐다. 잎이 자라면 필요한 만큼 베어 와 바로 반찬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밭에 부추가 있는 것은 특별한 수확을 기다리는 일이라기보다, 집 가까이에 늘 쓸 수 있는 채소가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부추무침은 반찬으로 자주 먹었고, 부추전은 가끔 더 반갑게 느껴졌다. 부추를 많이 넣은 전은 초록빛이 반죽 사이로 드러났고, 노릇하게 익어 가는 냄새는 부엌 밖까지 퍼졌다. 어린 내게는 부추가 어떤 식물인지보다 전이 언제 완성되는지가 더 중요했다. 부추전이 부쳐지는 동안에는 괜히 부엌 근처를 서성거리게 됐고, 갓 부친 전이 식탁에 올라오면 앞밭의 부추가 음식이 되어 돌아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추어탕을 먹을 때나 고기를 먹을 때 부추를 함께 먹는 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부추는 단독으로도 반찬이 됐지만, 다른 음식 곁에 놓이면 그 음식의 맛과 향을 더 또렷하게 해주는 잎처럼 느껴졌다. 상추와 함께 쌈으로 먹거나, 국밥과 함께 먹고, 전으로 먹는 방식은 달랐지만 내게 부추는 늘 식탁 한쪽에 있어야 자연스러운 채소였다. 그래서 부추를 보면 특정한 한 가지 음식보다, 어머니가 앞밭에서 잎을 베어 오시던 모습부터 떠오른다.
씨앗 봉투를 흔들다가 들었던 꾸중
어머니는 부추를 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해마다 씨를 받아 다음해에다음 해에 다시 심으셨다. 부추씨를 따서 잘 말린 뒤 씨앗 봉투에 넣어 두셨고, 그 봉투는 마당 한쪽에 매달려 있곤 했다. 겨울 동안 잘 말려 둔 씨앗은 봄이 되면 다시 밭으로 돌아갔다. 어린 내게는 검고 작은 씨앗이 다음 해에 초록색 부추가 된다는 일이 신기하면서도, 늘 보던 농사의 순서라 특별하게 묻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끔 씨앗이 다 마르기도 전에 내가 장난삼아 봉투를 흔들다가 씨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아까운 씨앗이 다 떨어진다며 나무라셨다. 당시에는 작은 씨앗 몇 알이 왜 그렇게 아까운지 잘 알지 못했다. 밭에는 부추가 늘 있는 것처럼 보였고, 봄이 되면 어머니가 다시 심으면 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씨앗은 다음 계절의 밭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씨앗 봉투는 단순히 씨를 보관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한 해 동안 기른 부추를 다음 해에도 이어 가기 위해 남겨 둔 시간이었다. 겨울 내내 마당 한쪽에 매달려 있던 봉투 안에는 봄에 다시 뿌릴 작은 씨앗들이 들어 있었다. 내가 봉투를 잘못 건드려 씨가 떨어지면 꾸중을 들었던 것도, 그 안에 다음 해 밭의 몫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부추씨에서 구자라는 이름까지
어린 시절의 내게 부추씨는 농사의 한 과정일 뿐이었다. 부추를 다시 심기 위해 받아 두는 씨앗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부추는 밭에서 자라고, 어머니는 잎을 베어 반찬을 만들고, 씨앗은 다음해를 위해 남겨 둔다. 그 순서가 너무 익숙해서 부추의 씨앗에도 따로 이름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약초를 공부하면서 부추씨가 구자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당 한쪽의 씨앗 봉투가 떠올랐다. 부추는 잎만 먹는 채소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모아 두던 작고 검은 씨앗도 따로 이름을 가진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농업 자료에서는 부추가 여러해살이 식물이며, 꽃이 지고 난 뒤 익은 열매에서 검은 씨가 나온다고 소개한다. 내가 어릴 때 본 것은 그 씨앗이 약재가 되는 모습이 아니라, 다음 봄을 위해 말리고 보관되던 모습이었다.
오십 대가 되면서 예전과 다른 체력의 변화를 느낄 때가 있다. 하루 무리한 뒤에도 다음 날이면 금세 회복되던 때와 달리,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길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부추씨를 따로 모아 무엇인가를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어머니가 앞밭을 돌보며 식탁을 채우던 시간이 먼저 떠오른다. 내게 부추는 특별한 해결책이나 약재 이름보다, 밭일과 손맛이 쌓여 한 가족의 일상을 지탱하던 채소에 가깝다.
지금도 부추전을 부치는 냄새를 맡으면 부추씨를 말리던 겨울과, 잎이 다시 자라던 봄, 앞밭에서 베어 온 부추가 식탁에 오르던 시간이 한꺼번에 이어진다. 어머니께서 씨앗 봉투를 조심스럽게 다루셨던 이유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게 부추는 한 끼 식탁의 반찬이면서, 해마다 씨를 받고 다시 심어 이어 가던 어머니의 밭일을 함께 기억하게 하는 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