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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원에서 만난 바디나물과 어머니의 베틀

by jamkkum 2026. 8. 6.

교수님이 가리킨 낯선 이름

약초원에서 본 바디나물
약초원에서 본 바디나물

바디나물이라는 이름은 약초 공부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됐다. 약초원을 방문했을 때 약초학 교수님이 눈앞의 식물을 가리키며 바디나물이라고 알려주셨다. 그전까지는 이름을 들어본 기억도 없었다. 가까이에서 본 바디나물은 처음에는 들이나 산야에서 흔히 보는 풀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한참 바라보고 나니 잎이 크고 여러 갈래로 나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식물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바로 외우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름이 독특해서인지, 교수님이 알려준 뒤에도 바디나물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이름을 알고 나서 다시 보면 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잎과 줄기에도 시선이 머문다.

 

교수님은 잎이 잘리면 하얀 진액이 보인다고 설명하셨다.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며 식물마다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씩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바디나물을 오래 관찰하거나 따로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다. 다만 이름을 들은 순간과, 여러 갈래로 나뉜 잎을 처음 본 장면은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한다.

 

식물을 처음 만나는 일은 대단한 장소에서만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약초원에서 누군가 이름을 짚어 주는 짧은 순간에도, 전에는 없던 기억 하나가 생긴다. 바디나물은 내게 바로 그런 식물이다. 직접 길러 보거나 자생지를 찾아본 적은 없지만, 그날 이후로 비슷한 잎을 보면 한 번 더 살피게 됐다.

 

약초원에서 식물을 볼 때는 안내를 듣기 전과 들은 뒤의 느낌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주변 식물과 섞여 있어 그냥 지나갈 듯했는데, 이름을 들은 뒤에는 잎 하나를 다시 보게 됐다. 큰 잎이 몇 갈래로 나뉜 자리를 바라보며 어느 부분이 기억에 남는지 스스로도 생각해 봤다. 식물의 이름을 안다고 해서 바로 잘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처음 본 날의 모습과 교수님의 설명을 함께 기억해 두면, 다음에 비슷한 식물을 만났을 때 함부로 단정하지 않고 더 자세히 확인할 계기가 될 것 같다.

잎을 보다가 떠오른 베틀의 북

바디나물이라는 이름에는 전통 베틀의 부속품인 바디가 떠오른다는 설명도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어린 시절 어머니가 베틀로 천을 짜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어머니는 북을 바디에 걸린 실 사이로 옮겨 넣으며 천을 짜셨다. 북이 실 사이를 오갈 때마다 들리던 덜컹거리는 소리도 아직 기억난다.

 

어릴 때의 나는 옆에서 그 움직임을 신기하게 지켜보곤 했다. 실이 끊어지지 않게 곁에서 거들거나, 실패를 감는 일을 도운 적도 있다. 큰일을 맡았던 것은 아니지만, 손으로 실을 만지고 어머니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보던 시간은 오래 남았다. 당시에는 베틀의 각 부속품 이름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어도, 북이 실 사이를 움직이는 모습만큼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바디나물의 잎을 보았을 때 나는 바디보다 북이 더 닮아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에서 베틀 사진을 다시 찾아봐도 그 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식물 이름의 유래를 내가 본 모양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여러 갈래로 뻗은 잎과 베틀의 부속품을 번갈아 보면서, 어린 시절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일이 흥미로웠다.

 

식물 이름 하나가 오래된 생활 도구와 연결된다는 점도 낯설면서 재미있었다. 요즘에는 베틀을 실제로 볼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바디나물이라는 말을 들으면 식물보다 먼저 어머니의 손, 실을 감던 실패, 북이 오가던 소리가 함께 떠오른다. 내게는 그 이름이 식물 이름이면서 동시에 집 안의 한 장면이 됐다.

 

어머니의 베틀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에는 천이 만들어지는 과정보다 북이 오가는 움직임과 소리에 더 관심이 갔다. 실패를 감는 일을 옆에서 도우며 실의 색과 감긴 모양을 보던 때도 있었다. 바디나물의 이름을 듣고 그때의 장면이 떠오른 것은 식물의 모양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낯선 이름 하나가 오래 잊고 있던 집 안의 풍경을 다시 꺼내 놓은 듯했다.

기록 속 바디나물이라는 이름

바디나물을 따로 찾아보니 바디나물이라는 식물 이름이 자료에 등록되어 있었다. 산과 들의 습지 주변에서 자라는 식물로 소개된 기록도 있었고, 꽃이 피는 계절의 모습도 함께 설명되어 있었다. 내가 약초원에서 본 것은 잎 중심의 모습이었기에, 자료 속 꽃에 대한 설명을 읽으니 같은 식물의 다른 계절도 궁금해졌다.

 

한편 바디라는 말의 유래는 자료마다 단정적으로 설명하기보다, 베틀의 바디를 떠올리게 한다는 식으로 추정해 소개하는 경우가 보였다. 그래서 이 글에서도 이름의 유래를 확정된 답처럼 적기보다, 교수님 설명을 듣고 내가 어린 시절의 베틀을 떠올렸다는 경험으로 남겨두려 한다. 식물 이름의 배경을 읽는 일과 실제로 기억하는 물건의 모양은 서로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바디나물의 이름이 오래된 기록에 있다는 사실보다, 그 이름이 내 개인적인 기억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식물 자료를 읽으면 모르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어머니가 베틀 앞에 앉아 계시던 집 안의 분위기나, 북이 오가던 소리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 부분은 내가 바디나물을 보면서 덧붙이게 된 기억이다.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다음 계절의 모습도 기다려 본다.

언젠가 그날을 기록해 두고 싶다.

그 기록은 이름을 외우기 위한 메모라기보다, 한 식물을 다시 만나기 위한 표시가 될 것 같다.

그때는 베틀 사진도 다시 함께 찾아볼 생각이다. 내가 기억하는 북의 모양과 실제 식물의 잎을 나란히 놓고 보면, 처음 약초원에서 느꼈던 낯섦도 조금 더 분명해질 듯하다.

 

다음에는 꽃이 피는 시기에 약초원을 찾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잎만 보았던 기억에 꽃의 색과 모양까지 더해지면, 바디나물이라는 이름을 지금보다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계절이 달라지면 같은 자리도 어떻게 달라지는지 함께 보고 싶다.

 

바디나물의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나는 아직 직접 먹어본 적이 없다. 도심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식물도 아니고, 이름이 비슷하거나 모습이 닮은 식물이 있을 수 있으니 함부로 채취할 생각도 없다. 식물은 정확한 이름을 확인하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시골이나 산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먹어 보기보다 먼저 자생지에서 바디나물의 전체 모습을 찾아보고 싶다. 잎이 어느 방향으로 나뉘는지, 줄기와 꽃은 어떤 모습인지, 내가 약초원에서 봤던 식물과 같은 인상인지 천천히 살펴볼 생각이다. 안내판이 있다면 이름도 다시 확인하고, 허용된 장소라면 사진으로 남겨 두고 싶다.

 

그날에는 바디나물의 잎을 보며 어머니의 베틀을 다시 떠올릴 것 같다. 북과 바디 중 무엇을 더 닮았는지 결론을 내리기보다, 식물 한 가지가 어린 시절의 손길과 소리까지 불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기록해 두려 한다. 다음 봄이나 여름에 다시 만난다면, 그때의 모습을 지금의 기억에 하나 더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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