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를 배우면서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식물과 열매를 다시 보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대추도 그 가운데 하나다. 우리 아파트 화단에는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초여름이 되면 작은 대추꽃이 피고 가을이 오면 빨간 열매가 달린다. 매년 그 앞을 지나면서도 나는 대추가 많이 열렸는지, 아직 푸른 열매인지, 붉게 익었는지 정도만 살폈다.
그런데 약초 공부를 하며 대추가 식물 이름과 생약 이름으로도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화단의 나무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대추꽃을 바라보다 보니 제사상에 올리던 대추, 동네 입구의 큰 대추나무, 친구들과 덜 익은 열매를 따 먹던 어린 시절의 가을도 함께 떠올랐다. 대추나무 한 그루가 내게는 계절의 풍경과 가족의 기억, 오래 전의 맛을 이어 주는 나무가 됐다.
화단에서 발견한 작은 대추꽃

우리 아파트 화단의 대추나무는 늘 같은 자리에 있다. 평소에는 다른 나무와 섞여 있어 특별히 눈에 띄지 않지만, 계절이 바뀌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존재를 알린다. 봄이 지나고 초여름이 되면 잎 사이에 작은 꽃이 보이고, 시간이 흐르면 초록빛 열매가 하나둘 달린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에는 열매가 붉어져 화단을 지날 때마다 시선이 머문다.
대추꽃은 크고 화려한 꽃은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꽃이 피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잎 사이에 작은 꽃들이 달려 있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힐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대추나무를 보면서 식물의 계절은 늘 조용히 진행된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열매가 익었을 때에야 나무를 바라보지만, 그 열매가 생기기 전에는 작은 꽃이 먼저 피어 있었을 것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은 대추나무를 갈매나무과 대추나무속의 Ziziphus jujuba로 소개한다.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열매이지만, 이름과 분류를 알고 나니 대추가 단순히 식탁 위의 간식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화단의 나무를 바라볼 때도 ‘대추가 달리는 나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계절마다 꽃과 잎과 열매가 바뀌는 하나의 식물로 보게 된다.
우리 아파트 화단의 대추나무는 해마다 열매가 많이 달리는 정도가 조금씩 달라 보였다. 어떤 해에는 잎 사이로 대추가 많이 보여 가을이 되면 붉은 열매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고, 어떤 해에는 전보다 열매가 적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정확한 이유를 알지는 못하지만, 매년 같은 나무를 보면서도 열매의 양이 달라진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예전에는 화단을 지나며 “올해는 대추가 많네” 또는 “올해는 별로 안 달렸네” 하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약초 공부를 한 뒤에는 꽃이 피는 시기와 열매가 맺히는 과정도 조금 더 궁금해졌다. 나무는 매년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것 같아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대추나무를 바라보는 일은 특별한 관찰 활동이 아니다. 출근하거나 산책할 때 잠시 시선을 두는 정도다. 그래도 같은 나무를 여러 해 지나며 보다 보면, 꽃이 피는 때와 열매가 익는 때가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는다. 약초 공부는 내게 익숙한 풍경 속 식물을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제사상 위의 큼직한 대추
대추를 떠올리면 어린 시절 제사상에 올리던 모습도 함께 생각난다. 당시 내게 대추는 제사상에 놓이는 과일 가운데 하나였다. 제사가 끝난 뒤 상에 올렸던 음식과 과일을 나누어 먹을 때면, 대추도 자연스럽게 손에 들었다. 평소에 자주 먹는 과일은 아니었지만, 제사를 지낸 뒤 먹는 대추에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제사 준비를 하실 때 대추를 고르는 일에도 신경을 쓰셨다. 너무 작거나 모양이 좋지 않은 것보다, 크고 빛깔이 좋은 대추를 골라 올리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에는 왜 그렇게까지 살피시는지 잘 몰랐다. 그저 제사상에는 좋은 모양의 과일을 올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에게 대추는 단순히 먹는 열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상님께 올리는 상을 정성껏 준비하는 과정의 한 부분이었고, 작은 과일 하나에도 마음을 담는 일이었을 것이다. 제사가 끝난 뒤 대추를 먹던 내 기억에는, 음식의 맛보다도 가족이 모이고 어머니가 분주히 준비하시던 모습이 더 오래 남아 있다.
대추는 붉은빛이 선명해서 제사상 위에서도 눈에 잘 띄었다. 배나 사과처럼 크지는 않지만, 작은 열매가 여러 개 놓여 있으면 나름의 존재감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 제사상에 놓인 대추를 보며 그저 달콤한 간식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열매가 가족의 기억과 연결된 물건처럼 느껴진다.
약초 공부를 하며 대추가 생약명으로도 쓰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내가 오래전부터 대추를 여러 방식으로 만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단의 나무로 보고, 제사상 위의 과일로 보고, 명절이나 겨울철 간식으로 먹고, 동네 나무에서 덜 익은 열매를 따 먹기도 했다. 이름은 하나지만 기억 속 대추의 모습은 여러 가지다.
그래서 아파트 화단의 대추나무를 볼 때면 제사상 위의 대추도 함께 떠오른다. 작은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 붉게 익는 시간이, 어느 집의 제사 준비와 가족의 식탁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일상의 연결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동네 입구의 덜 익은 대추
어린 시절 동네 입구에는 큰 대추나무가 있었다. 가을이 오면 친구들과 그 나무 근처에서 놀다가 덜 익은 대추를 발견하곤 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직 따지 말아야 할 열매였을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에게는 나무에서 직접 딸 수 있는 작은 보물처럼 느껴졌다. 손을 뻗어 닿는 대추를 따서 친구들과 나누어 먹던 장면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그때 먹던 대추는 완전히 익은 붉은 대추와 달랐다. 아직 푸른빛이 남아 있었고, 한입 베어 물면 아삭한 느낌과 함께 새콤한 맛이 났다. 달콤하게 익은 대추도 맛있지만, 그 시절의 덜 익은 대추에는 가을바람과 친구들의 웃음이 함께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대추를 보면 그 새콤하고 아삭했던 맛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다.
어린 시절에는 대추를 어떤 식물의 열매인지, 나무가 언제 꽃을 피우고 어떻게 열매를 맺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동네에 있는 나무였고, 가을이면 열매가 달리는 곳이었다. 친구들과 놀다가 대추를 발견하면 누가 더 높은 곳의 열매를 따는지, 누가 더 맛있는 대추를 찾는지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제는 아파트 화단의 대추꽃을 보며 그 시절의 나무를 떠올린다. 꽃이 피고 초록 열매가 맺힌 뒤, 시간이 지나 붉은 대추가 되는 과정이 예전보다 조금 더 선명하게 상상된다. 어린 시절에는 가을의 열매만 보았지만, 지금은 그전에 피었던 작은 꽃도 함께 생각하게 됐다.
대추는 내게 약초 공부에서 새롭게 만난 식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오래전부터 일상에 있던 열매다. 제사상 위에 놓인 대추, 어머니가 고르던 좋은 대추, 동네 입구 나무에서 따 먹던 덜 익은 대추, 그리고 아파트 화단에서 보는 대추꽃이 모두 하나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앞으로 화단을 지날 때 대추나무에 꽃이 피었는지, 열매가 얼마나 달렸는지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대추나무를 볼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렵게 배운 식물 정보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먹던 아삭한 대추의 맛과 어머니가 제사상을 준비하시던 모습일 것이다. 익숙한 나무 한 그루를 다시 바라보는 일은, 오래된 기억을 다시 만나는 일과도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