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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화단의 대추꽃에서 시작된 오래된 가을 기억

by jamkkum 2026. 8. 27.

약초를 배우면서 다시 보게 된 식물 가운데 대추나무도 있다. 대추나무는 특별한 산이나 약초원에서만 보는 나무가 아니라, 어디에서나 비교적 흔하게 만나는 나무였다. 우리 아파트 화단에도 대추나무가 있어 계절마다 같은 자리를 지나며 보게 된다. 지금은 작은 대추꽃이 피어 있고, 가을이 되면 붉은 열매가 가지에 달린다. 그동안에는 열매가 많이 달리는 해인지 아닌지 정도만 살폈지, 대추나무의 꽃과 열매가 이어지는 시간을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다.

 

대추나무는 해마다 열매가 많이 달리는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어떤 해에는 가지가 열매로 무겁게 보일 만큼 많이 달리고, 그다음 해에는 눈에 띄게 적게 달리는 때도 있었다. 나는 화단을 지날 때마다 그런 차이를 보며 대추나무도 해마다 쉬는 해가 있는 모양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나무지만, 계절과 해마다 보여 주는 모습은 조금씩 달랐다.

화단에서 보는 대추꽃

아파트 화단의 대추나무
아파트 화단의 대추나무

아파트 화단의 대추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는 열매가 달린 가을보다 눈에 덜 띈다. 꽃은 크거나 화려하지 않고, 잎 사이에서 작은 빛깔로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야 꽃이 피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도 있다. 가을에는 붉은 열매가 눈에 먼저 들어오지만, 지금은 그 열매가 시작되는 자리에 작은 꽃이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대추나무의 꽃은 초여름에 잎겨드랑이에서 노란빛을 띠며 피고, 열매는 가을에 붉은빛 또는 적갈색으로 익는다고 소개된다. 내가 화단에서 보아 온 꽃과 열매의 순서도 이런 계절의 흐름과 이어진다. 다만 아파트 화단의 나무를 보며 꽃이 몇 개 피었는지, 열매가 왜 해마다 다르게 달리는지까지는 자세히 확인하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봄과 여름의 작은 꽃, 가을의 붉은 열매, 그리고 해마다 달라 보이던 가지의 모습이다. 

 

이름을 알고 나서 화단을 보면 전보다 조금 더 오래 멈추게 된다. 예전에는 붉은 대추가 달려야만 대추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꽃이 피는 때와 초록빛 열매가 생기는 때도 같은 나무의 시간으로 보인다. 가까운 화단의 나무 하나가 계절마다 다른 장면을 보여 준다는 사실이 새롭게 느껴진다.

제사상에 오르던 대추

어린 시절 대추는 제사상에서 먼저 만난 열매였다. 제사를 지내기 전 어머니는 대추 가운데도 크고 모양이 좋은 것을 고르려고 신경 쓰셨다. 제사상에 놓인 붉은 대추를 보면 평소에 먹는 간식과는 조금 다른 과일처럼 느껴졌다. 제사가 끝난 뒤에야 대추를 먹을 수 있었고, 그때의 대추는 제사 준비로 분주하던 집안의 분위기와 함께 기억난다.

 

우리 집 조상님들이 대추를 좋아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가 제사 때마다 유난히 큼직하고 좋은 대추를 고르려 하셨던 모습은 선명하다. 대추의 색과 크기, 표면의 상태를 살피던 손길을 보며 나는 대추가 제사상에서 중요한 과일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았다. 당시에는 왜 대추를 올리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붉은 열매가 가지런히 놓인 모습은 오래 남았다.

 

명절이나 제사 뒤에 먹는 대추는 평소 간식으로 먹는 것보다 조금 더 달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나 내게 대추의 기억은 맛만으로 남아 있지 않다. 제사 준비를 하던 어머니의 모습, 상 위에 놓인 과일, 가족들이 모이던 시간이 함께 들어 있다. 대추는 내게 나무의 열매이면서도 집안의 오래된 행사를 떠올리게 하는 과일이다.

동네 입구의 덜 익은 대추

동네 입구 어귀에는 큰 대추나무가 있었다. 가을이 오면 친구들과 그 나무 아래에서 놀았고, 아직 덜 익은 대추를 따 먹기도 했다. 완전히 붉게 익기 전의 대추는 아삭한 느낌이 있었고, 새콤한 맛이 났다. 지금 생각하면 잘 익은 대추와는 다른 맛이었지만, 당시에는 그 새콤하고 단단한 맛도 나름의 별미처럼 느껴졌다.

 

친구들과 나무를 올려다보며 어느 가지에 대추가 많이 달렸는지 찾던 시간이 기억난다. 누가 먼저 손에 닿는 열매를 찾는지 살피고, 덜 익은 대추를 한입 베어 물며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다. 그런 날에는 대추나무가 동네 입구의 큰 나무이면서, 가을에만 열리는 작은 놀이터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동네 나무의 열매를 예전처럼 따 먹지 않는다. 나무의 관리 상태나 채취가 허용된 곳인지 알기 어렵고, 멀리서 본 열매만으로 상태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어린 시절 덜 익은 대추를 먹던 일은 그 시절의 기억으로 남겨 두고 싶다. 지금의 나는 아파트 화단에서 대추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

 

대추나무를 떠올리면 이제는 붉은 열매 하나만 생각나지 않는다. 화단에서 피는 작은 꽃, 해마다 다르게 달리는 열매, 제사상 위의 큼직한 대추, 동네 입구에서 먹었던 덜 익은 대추가 차례로 이어진다. 약초 공부를 하며 대추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게 대추나무는 무엇보다 가까운 화단과 어린 시절의 집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나무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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