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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자랐지만 약초원에서 처음 만난 고삼

by jamkkum 2026. 8. 7.

익숙한 시골 풍경에 없던 이름

잎이 아카시아와 비슷한 고삼
잎이 아카시아와 비슷한 고삼

약초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과 함께 서울대 약초원을 방문했을 때 고삼이라는 식물을 처음 제대로 봤다. 교수님은 고삼이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는데도 고삼을 본 기억이 없어서 조금 의아했다. 이름을 몰라서 그냥 지나쳤던 것인지, 내가 살던 곳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시골에서 지낸 시간이 길다고 해서 주변 식물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논밭 가장자리와 낮은 산, 집 근처 길가에는 늘 풀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꽃이 유난히 눈에 띄는 식물이나 열매가 달리는 나무 정도만 이름을 기억했던 것 같다. 나머지는 그저 풀이라고 부르며 지나갔다. 약초원에서 고삼이라는 이름을 듣고 나니, 예전 시골 풍경 속에도 내가 몰랐던 식물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이 식물 앞에서 고삼이라고 알려주시기 전까지 내게 그것은 낯선 풀 한 포기처럼 보였다. 설명을 듣고 나서야 줄기와 잎을 한 번 더 보게 됐다. 이름을 들은 뒤에야 식물이 조금 선명해지는 경험이었다. 익숙한 공간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낯선 약초원에서 만났다는 점도 묘하게 남았다.

 

농촌진흥청 농사로 자료에는 고삼을 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소개하고, 낮은 산과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라는 식물로 적어 두었다. 잎은 여러 작은 잎이 모인 형태이고, 여름에는 연한 노란빛 꽃이 핀다고 한다. 내가 약초원에서 본 날에는 꽃보다 식물 전체의 인상과 교수님의 목소리가 먼저 기억났다.

몇 해째 같은 자리에 자란다는 말

그날 함께 걷던 수강생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누군가는 교수님 가까이에서 설명을 들었고, 누군가는 식물 앞에서 잠시 멈춰 잎을 들여다봤다. 나는 이름을 메모해 두고 나서야 눈앞의 식물이 조금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약초원에는 처음 보는 식물이 많았지만, 모든 이름을 한 번에 외우기보다 그날 유난히 기억에 남은 한두 가지부터 다시 떠올려 보는 편이 내게는 맞았다.

 

고삼을 본 날에도 나는 줄기의 높이나 잎의 수를 정확히 세지 못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지가 뻗어 있었는지도 지금은 또렷하지 않다. 그래도 시골에서 자랐는데도 모르던 식물을 약초원에서 만났다는 사실은 남았다. 현장에서 본 장면과 나중에 자료에서 읽은 설명 사이에는 아직 빈칸이 많다. 그 빈칸까지 인정하는 것이, 식물을 안다고 서두르기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은 꾸준히 약초원을 방문하며 고삼이 자라는 과정을 관찰해 오셨다고 했다. 특히 몇 년째 같은 자리에서 계속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나는 식물을 볼 때 그날의 모습만 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 식물이 같은 자리에 여러 해 이어져 자란다는 말을 듣고 나니, 약초원은 한 번 보고 끝나는 곳이 아니라 계절마다 다른 장면이 남는 장소처럼 느껴졌다.

 

그 설명을 듣고 다시 본 고삼은 단지 한 포기의 풀로만 보이지 않았다. 봄에는 새 잎이 올라오고, 여름에는 꽃이 피며,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모습이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날의 고삼은 긴 시간 가운데 한 장면일 뿐이었다. 같은 자리를 여러 번 찾은 사람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모습들이 더 쌓여 있을 것이다.

 

고삼이 오래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식물의 시간을 생각하게 됐다. 사람은 약초원을 한 번 방문하고 사진 몇 장을 남길 수 있지만, 식물은 계절이 바뀌는 자리를 계속 지킨다. 나는 고삼의 생장 과정을 직접 여러 해 본 것이 아니다. 다만 교수님의 관찰 이야기를 들었고, 그날 약초원에서 실제 식물을 한 번 만났다. 내가 본 것과 들은 것을 구분해 두는 편이 맞겠다.

 

예전에 재래식 화장실과 고삼 뿌리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오래된 생활 속에서 어떤 식물이 언급됐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직접 보거나 확인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 대목은 고삼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 함께 따라오는 옛날식 이야기 정도로만 남겨 둔다.

고삼, 너삼, 도둑놈의 지팡이

약초원에서는 이름표가 붙은 식물을 보며 기억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산이나 들에서 처음 보는 풀을 만나면 이름을 바로 확인할 단서가 많지 않다. 비슷한 풀들이 섞여 있고, 걷는 중에는 자세히 들여다볼 시간도 부족하다. 반면 그날은 교수님의 설명과 식물의 자리가 함께 남았다. 이름표가 있는 곳에서 실제 식물을 보며 들은 이야기는 책에서 글자만 읽을 때와 조금 달랐다.

 

공식 자료에서 다시 이름을 확인한 뒤에도, 내가 기억하는 고삼은 분류표 속의 식물이라기보다 약초원 한쪽에서 처음 이름을 들었던 풀이다. 자료의 문장은 식물의 자리를 알려주고, 내 기억은 그날의 분위기를 남긴다. 둘을 함께 놓고 보면 고삼이라는 낯선 이름이 조금 덜 멀게 느껴진다.

 

시골에서는 계절마다 풀의 높이와 색이 바뀌어도, 그 변화를 이름으로 따로 붙여 기억하지는 않았다. 봄에는 새 풀이 올라오고 여름에는 길가가 무성해졌으며, 가을에는 마른 줄기가 남는 정도였다. 고삼을 알고 난 뒤에도 과거의 풍경을 되돌려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다. 다만 그때 지나쳤던 풀밭을 떠올릴 때, 이름을 모르는 식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함께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고삼을 떠올리면 식물의 정확한 특징보다도, 교수님이 가리킨 자리와 잠시 멈춰 서서 설명을 듣던 시간이 먼저 떠오른다. 낯선 이름이 풍경 속에 자리를 잡는 방식도 이런 것 같다.

 

한 번 본 식물의 이름을 오래 기억하는 데에는, 이렇게 내 경험과 연결된 장면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날의 고삼은 그래서 한 포기의 풀보다 더 오래 남았다.

이름을 몰랐던 시절의 풍경도 함께 말이다.

그날처럼.

아마도 늘.

 

약초원 방문 뒤 고삼을 찾아보니 국립생물자원관에는 고삼이 Sophora flavescens라는 이름으로 등록돼 있었다. 자료에는 고삼 외에 너삼과 도둑놈의 지팡이라는 이름도 함께 보였다. 하나의 식물에 여러 이름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고삼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을 때 고등학교 3학년을 줄인 말부터 떠올랐는데, 이제는 약초원에서 본 식물의 모습도 함께 생각난다.

 

‘도둑놈의 지팡이’라는 별칭은 특히 낯설어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별칭만으로 식물의 모습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식물에 이름을 붙이고 부르던 방식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을 것 같다. 자료를 읽을 때도 나는 무엇에 쓰였는지를 길게 따라가기보다, 식물의 이름과 분류, 자라는 환경처럼 약초원에서 본 장면과 이어지는 부분을 먼저 보게 된다.

 

고삼을 보며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은 특별한 지식 하나보다도, 시골에서 자랐지만 이름조차 몰랐던 식물을 약초원에서 처음 만났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이름 없는 풀처럼 지나쳤을 풍경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떠오른다. 고삼은 내게 어떤 결론을 남긴 식물이라기보다, 익숙하다고 믿었던 시골 풍경에도 아직 모르는 이름이 많다는 것을 알려준 식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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