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잎은 어린 시절의 명절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초록빛 기억이다. 시골집 주변 산에는 언제나 소나무가 있었고, 솔잎은 늘 눈에 익은 나무의 일부였다. 평소에는 떫고 씁쓸해서 맛있다고 느끼지 못했지만, 명절 전날이 되면 송편을 찌기 위해 꼭 필요한 재료가 됐다. 산에서 솔잎을 따 오고, 찜통에 송편과 함께 켜켜이 놓던 일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었다. 솔잎 향은 집 안과 송편에 남아, 지금도 명절을 생각하면 함께 따라온다.
솔잎은 평소에는 산에 널려 있는 잎처럼 보였지만, 명절을 앞두면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재료가 됐다. 그래서 내 기억 속 솔잎은 소나무의 일부이면서도, 송편을 기다리게 하는 명절의 신호처럼 남아 있다.
명절 전날 산에서 따 오던 솔잎

명절이 다가오면 집안에서는 송편을 빚을 준비를 했다. 반죽과 소를 마련하는 일도 있었지만, 찜통에 깔 솔잎을 준비하는 일도 빠질 수 없었다. 아이였던 내게는 산에 올라가 푸르고 싱싱한 솔잎을 골라 따 오는 일이 맡겨졌다. 집 주변 산에는 소나무가 많았고, 어느 나무에서 솔잎을 따야 할지 어른들이 대략 알려주셨던 것 같다.
솔잎을 딸 때는 너무 마르거나 누렇게 변한 잎보다 푸른 잎을 찾으려 했다. 바늘처럼 가는 잎이 손에 닿으면 까슬까슬한 감촉이 느껴졌고, 한 움큼씩 모으면 솔 향이 손에 남았다. 솔잎을 한 아름 안고 산길을 내려오던 장면도 기억난다. 그때는 내가 가져온 솔잎이 곧 명절 음식에 쓰인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집에 돌아오면 솔잎은 송편을 찌는 찜통 안에 놓였다. 송편끼리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솔잎을 깔고, 그 위에 송편을 놓고, 다시 솔잎을 얹는 식이었다. 나는 그 과정을 옆에서 보며 산에서 따 온 잎이 어떻게 음식의 일부가 되는지 자연스럽게 배웠다. 나중에 찜통 뚜껑을 열면 뜨거운 김과 함께 은은한 솔향기가 퍼졌다.
송편에서도 솔잎 향이 은근히 났다. 쌀가루와 소의 맛 사이에 솔 향이 섞이면 명절 음식이라는 느낌이 더 또렷해졌다. 솔잎 자국이 송편에 남은 모습도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솔잎은 단순히 송편 아래에 까는 재료가 아니었다. 산에 다녀온 시간, 가족이 함께 송편을 빚던 저녁, 찜통에서 나던 향까지 이어 주는 매개였다.
우리 역사넷에 소개된 기록에도 추석송편은 솔잎을 깔고 찌는 떡이라는 설명이 있다. 송편과 솔잎을 번갈아 넣어 찌면 향이 배고 잎의 무늬가 남는다고 적혀 있다. 내가 어린 시절 집에서 보았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반가웠다. 오래된 기록 속의 송편과 우리 집 찜통 속 송편이 같은 솔잎 향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솔잎을 준비하고 나면 집 안에서는 송편을 빚는 일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반죽을 떼고, 누군가는 소를 넣고, 누군가는 빚은 송편을 찜통으로 옮겼다. 나는 산에서 따 온 솔잎이 송편 사이에 놓이는 모습을 보며 내 심부름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찜통에서 올라오는 향까지 맡고 나서야 솔잎을 따 온 일이 완성되는 느낌이 들었다.
명절 전날 산에 오르던 길도 음식의 기억 안에 남아 있다. 바닥에는 마른 솔잎이 쌓여 있고, 발을 디딜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솔잎을 너무 많이 따기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고르려 했던 것 같은데, 어린 기억이라 정확한 양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한 아름 안고 내려올 정도의 솔잎이 필요했고, 그 초록색이 명절 준비의 한 부분이었다.
지금은 송편용 솔잎을 구할 때도 나무주사나 병해충 방제 지역 여부를 살피고, 채취가 허용된 곳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산림청도 방제 지역의 솔잎 채취에 주의하라고 안내한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던 기준이다. 그래서 그때의 산행은 추억으로 남기고, 지금은 자연에서 무엇을 가져오기 전에 먼저 장소와 나무의 상태를 생각하는 편이 맞겠다.
소나무 곁에서 놀던 어린 시절
솔잎을 따러 산에 갈 때면 소나무는 늘 가까운 나무였다. 집 주변 산에 워낙 많아서 특별한 나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솔잎을 한 번씩 따서 씹어 본 적도 있는데, 입안에는 떫고 씁쓸한 맛이 남았다.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늘 보던 잎을 직접 입에 넣어 보는 일이 어린 마음에는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봄이 되면 소나무 봉오리 주변의 작은 꽃을 보기도 했다. 소나무 겉껍질을 조심스럽게 벗긴 뒤 속껍질을 얇게 떼어 껌처럼 씹어 보던 기억도 있다. 송진 향과 끈적한 느낌이 입안에 남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장난에 가까웠다. 당시에는 나무의 껍질을 벗기거나 식물 일부를 만지는 일이 나무에 어떤 영향을 줄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른들이 봄철의 어린 녹색 솔방울을 따서 술에 담가 두는 모습도 본 기억이 있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고, 왜 그렇게 하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다만 소나무에서 나오는 잎, 꽃, 솔방울, 껍질이 각기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소나무는 참 여러 모습이 있는 나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지금은 그때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지는 않는다. 특히 산이나 공원, 길가의 나무에서 잎이나 껍질을 함부로 채취하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나무는 나무에 달린 잎으로 살아가고, 방제 지역인지 여부나 채취가 가능한 장소인지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기억으로 남기되, 지금의 자연에서는 나무를 보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소나무는 상록성 침엽수로, 바늘잎이 두 개씩 한 묶음으로 붙어 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솔잎을 모두 같은 모양의 잎으로만 봤지만, 자료를 읽은 뒤에는 잎 두 가닥이 함께 달린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 내가 기억하는 소나무는 산비탈에 서 있던 큰 나무였고, 지금의 나는 그 나무의 잎을 조금 더 자세히 보는 사람이다.
소나무 주변에서 놀 때는 솔잎뿐 아니라 땅에 떨어진 솔방울도 자주 만졌다. 마른 솔방울은 손에 쥐면 단단했고, 비늘처럼 겹친 모양이 재미있었다. 어린 솔방울과 마른 솔방울은 같은 나무에서 나왔는데도 전혀 다른 물건처럼 보였다. 나는 그 차이를 식물의 성장으로 이해하기보다, 산에서 찾을 수 있는 놀잇감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소나무 껍질도 가까이서 보면 거칠고 붉은빛이 돌았다. 어릴 때는 속껍질을 떼어 본 기억이 재미로 남아 있지만, 지금은 나무의 껍질도 나무를 지키는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에는 나무를 놀잇감과 재료로 만났고, 지금은 오래 산 나무를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보게 됐다. 같은 소나무를 보는 눈도 시간이 지나며 달라진 셈이다.
집 주변 산의 소나무는 계절이 달라도 늘 푸르게 보였다. 겨울에 다른 나무의 잎이 떨어진 뒤에도 소나무는 초록빛을 유지했다. 그때는 그 모습이 당연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산의 색을 오래 지켜 주는 나무였다. 명절의 솔잎도, 봄의 솔방울도, 겨울 산의 초록빛도 모두 같은 나무에서 이어진 기억이다.
솔 향으로 남아 있는 시골의 명절
지금은 시골에 자주 가지 못해 예전처럼 솔잎을 따러 산에 오르는 일은 드물다. 대신 가끔 솔잎이 일부 재료로 쓰인 음료를 마시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음료의 맛보다도 포장을 열 때 느껴지는 향이나, 솔이라는 글자가 주는 이미지가 먼저 기억을 건드린다. 산에서 따 온 솔잎을 안고 집으로 내려오던 날과 송편을 찌던 저녁이 함께 떠오른다.
약초 공부를 하며 솔잎에 관한 여러 설명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 솔잎은 어떤 기능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재료라기보다, 명절을 준비하던 집안의 풍경에 가깝다. 솔잎을 따는 일은 작은 심부름이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명절 준비에 참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솔잎의 향을 맡으면 음식보다 먼저 산길과 찜통, 가족들의 손이 생각난다.
소나무는 가까운 산에서 늘 보던 나무였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다. 명절 전에는 송편용 솔잎을 내주던 나무였고, 봄에는 봉오리와 솔방울을 보여 주던 나무였으며, 평소에는 산길의 그늘과 송진 향으로 기억되는 나무였다. 하나의 나무가 생활 속에서 여러 역할을 가졌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서야 더 분명해졌다.
이제는 솔잎을 따는 일보다, 산길에서 소나무를 바라보는 일이 더 자연스럽다. 잎의 색과 줄기의 붉은빛, 바람이 불 때 나는 소리를 보며 예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송편을 찌기 위해 솔잎을 골랐던 어린 시절의 나는 소나무가 얼마나 오래 자라야 그 자리에 서 있는지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 나무가 남아 있는 풍경 자체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솔잎은 내게 떫고 씁쓸한 맛보다 은은한 향으로 남아 있다. 송편에 배던 향, 산길에서 손에 묻던 향, 집 안에 퍼지던 향이 모두 다르면서도 같은 소나무에서 왔다. 명절 전날 솔잎을 한 아름 안고 내려오던 아이의 기억은 오래 지났지만, 솔 향을 만날 때마다 그 시절의 풍경은 비교적 또렷하게 돌아온다.
소나무에 관한 옛 기록과 생활문화 이야기를 찾아보면 송편에 솔잎을 쓰는 풍습이 오래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가족과 함께 했던 방식도 아주 특별한 집안의 일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내 기억 속 솔잎은 기록 속 문화보다 먼저, 산에서 손으로 따고 찜통에 넣어 보았던 실제 감촉과 향으로 남아 있다.
가끔 명절이 가까워지면 송편을 보며 솔잎이 생각난다. 떡을 만드는 과정 전체를 다 기억하지는 못해도, 솔잎을 깔던 찜통과 뚜껑을 열 때 올라오던 김은 잊히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송편을 먹는 일보다 솔잎을 따러 가는 일이 더 재미있었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 작은 심부름이 시간이 지나 이렇게 오래된 기억이 됐다.
솔잎은 내게 시골의 산과 집 안의 부엌을 이어 주는 식물의 일부다. 지금은 산에 가서 솔잎을 따지 않아도, 소나무가 보이는 길을 걷거나 송편 향을 맡으면 그 연결이 다시 느껴진다. 오래전 명절 준비는 끝났지만, 그때 솔잎에 남았던 향은 기억 속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