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산딸기 덤불과 보랏빛 오디가 남긴 어린 시절의 길

by jamkkum 2026. 10. 15.

어릴 때 가장 많이 따 먹었던 열매 가운데 하나가 산딸기다. 시골에서 자랄 때는 논두렁과 밭두렁, 산기슭과 하천 주변에 산딸기 덤불이 있었다. 강이나 못 둑을 따라 걷다가도 열매를 발견하곤 했다. 학교를 오가는 길이나 소를 먹이러 다니는 길목마다 눈에 익은 덤불이 있어, 그 앞을 지날 때면 빨간 열매가 달렸는지 먼저 살폈다. 내게 산딸기는 멀리 찾아가야 만나는 과일이 아니라, 늘 다니던 길에서 반갑게 발견하는 먹거리였다.

 

친구들과는 누가 먼저 산딸기를 발견하는지 경쟁하듯 다녔다. 가시에 손등을 긁히면서도 덤불 안으로 손을 넣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식 웃음이 난다. 당시에는 열매 하나를 찾아 먹는 일이 놀이이기도 했다. 얼마 전 친구들과 산속 계곡을 찾았다가 다시 산딸기를 만나니, 오래전 그 길과 손끝의 감촉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학교 가는 길과 소를 먹이던 길

산딸기를 찾던 길은 따로 정해진 산책길이 아니었다. 학교에 가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소를 먹이러 다니던 길이었다. 해야 할 일이 있어 걷는 동안에도 덤불이 보이면 눈길이 갔다. 친구들이 먼저 열매를 발견하면 나도 그쪽을 바라봤고, 조금이라도 더 빨갛게 보이는 열매를 찾으려 했다. 같은 길을 여러 번 다니면서 어느 자리에 덤불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됐다.

 

내 기억 속에서는 봄부터 여름까지 산딸기를 만났고, 가을에도 비슷한 열매를 따 먹었던 장면이 남아 있다. 다만 당시에는 식물의 종류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우리가 산딸기라고 불렀던 열매가 모두 같은 종류였는지, 어느 달에 무엇을 먹었는지까지는 정확히 되짚기 어렵다. 지금 글에서는 계절마다 길가의 덤불을 살피며 열매를 찾았다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겨 두고 싶다.

 

덤불 속으로 손을 넣을 때는 가시를 조심해야 했지만, 눈앞의 열매가 더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손등이 긁혀도 열매를 찾아 먹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무심하게 손을 넣지 않겠지만, 어린 내게는 덤불의 가시까지 산딸기를 만나는 과정의 일부였다. 붉은 열매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손을 어디로 뻗을지 망설이던 순간도 함께 남아 있다.

 

그때는 과일을 사서 먹는 일보다 산과 들에서 발견한 열매를 친구들과 나누는 일이 더 익숙했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길에서 만난 작은 열매도 반가운 간식이었다. 산딸기를 많이 먹었다고 해서 매번 맛을 자세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친구들과 서로 먼저 찾겠다고 눈을 밝히던 모습과 평소 다니던 길의 풍경이 맛보다 오래 남았다.

입술과 손에 남던 오디의 보랏빛

산딸기와 함께 많이 따 먹었던 열매는 오디였다. 내 기억 속 오디는 봄에 잠깐 만날 수 있는 먹거리였다. 누에를 먹이기 위해 뽕나무를 자르고 나면 더는 열매를 먹을 수 없어 아쉬웠다. 오디가 달린 나무를 보며 반가워하다가도, 어느 날 그 자리가 달라져 있으면 올해는 더 먹기 어렵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오디를 먹은 흔적은 쉽게 숨길 수 없었다. 입술과 손이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었고,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또 오디를 따 먹었냐고 핀잔을 주셨다. 굳이 어디에 다녀왔는지 말하지 않아도 얼굴과 손이 먼저 알려 주는 셈이었다. 지금은 그 핀잔까지 정겹게 기억나지만, 당시에는 오디를 먹고 왔다는 사실이 바로 드러나는 것이 조금 멋쩍었을 것이다.

 

산딸기는 길을 다니며 여러 번 찾아 먹었던 열매로 남아 있고, 오디는 짧은 때를 놓치면 다음을 기다려야 했던 열매로 기억된다. 이것은 내가 살던 동네와 그 시절의 경험에서 생긴 차이다. 나무가 자라고 관리되는 방식까지 모두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짧게 느껴졌기에 오디가 더 특별했을지도 모른다. 두 열매는 맛뿐 아니라 만날 수 있던 시간의 길이도 다르게 남아 있다.

계곡에서 다시 만난 산딸기

문경 계곡에서 본 산딸기
문경 계곡에서 본 산딸기

며칠 전 친구들 모임으로 산속 계곡을 찾았을 때 산딸기를 발견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열매를 오랜만에 만난 듯 반가웠고, 어린 시절 기억이 먼저 떠올라 맛을 보았다. 빨갛게 익어 보였지만 예상했던 단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신맛과 떫은맛이 더 또렷해, 기억 속 산딸기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전날 비가 내렸다는 사실 때문에 날씨가 맛에 영향을 주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 열매가 왜 시고 떫었는지는 알 수 없다. 색이 빨갛다는 이유만으로 맛이나 익은 정도를 모두 판단할 수 없다는 점도 다시 느꼈다. 그날의 경험은 비 때문에 단맛이 빠졌다는 설명보다, 내가 기대했던 맛과 실제로 느낀 맛이 달랐다는 사실로 남겨 두는 편이 맞겠다.

 

맛은 예상과 달랐지만, 손끝에 닿던 말랑한 질감과 새콤하게 느껴진 향은 어릴 때를 떠올리게 했다. 친구들과 서로 더 맛있어 보이는 열매를 살피며 웃던 시간도 즐거웠다. 어린 시절에는 같은 길을 걸으며 산딸기를 찾았고, 이번에는 모임으로 찾아간 계곡에서 같은 열매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열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웃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다만 이번 일을 다음에도 같은 장소에서 열매를 따 먹겠다는 계획으로 이어가지는 않으려 한다. 그날 맛본 일은 여행 중의 경험으로 남겨 두고 싶다. 앞으로는 덤불에 손을 넣기보다 친구들과 만난 장소의 풍경과 열매가 달린 모습을 바라보며 기억을 떠올리는 편이 더 자연스럽겠다. 반가운 마음과 실제 행동은 따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열매보다 오래 남은 사람과 길

약초 공부를 하며 산딸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먼저 떠올린 것은 특별한 쓰임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길이었다. 논두렁과 밭두렁, 학교 가는 길과 소를 먹이던 길, 오디를 먹고 돌아왔을 때의 어머니가 차례로 생각났다. 식물의 이름을 새로 배우는 시간이 이미 알고 있던 풍경을 다시 꺼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산딸기와 오디는 내게 맛을 가진 열매이면서, 그때 함께 다니던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가던 시간을 품고 있다. 산딸기의 붉은빛은 덤불 속으로 뻗던 손을 떠올리게 하고, 오디의 보랏빛은 어머니의 한마디를 데려온다. 계곡에서 만난 산딸기도 언젠가는 그날 친구들과 웃던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오래 익숙했던 열매를 다시 만나는 일은, 잊고 지내던 사람과 길을 잠시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