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은 어린 시절 가을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던 열매 가운데 하나다. 동네에 밤나무가 많았고, 밤이 익는 철이면 친구들과 밤나무 아래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땅에 떨어진 밤을 줍기도 했고, 아직 벌어지지 않은 밤송이를 발견하면 어떻게든 안에 든 밤을 꺼내 보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지만, 그때의 우리에게 밤나무 아래는 가을마다 열리는 작은 보물창고 같았다.
밤송이에는 가시가 많았고, 밤을 꺼내는 일은 늘 손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발로 밤송이를 밟아 보기도 하고, 바지자락에 가시가 걸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뒤지기도 했다. 설익은 밤을 잘못 골라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 떫은맛이 퍼졌지만, 그 맛 때문에 밤나무 아래에 다시 가지 않게 되지는 않았다. 가을이면 친구들과 함께 밤을 줍고, 가시에 찔리고, 떫은맛에 얼굴을 찌푸리던 일이 자연스럽게 반복됐다.
신발과 바지에 붙어 있던 밤송이 가시
밤나무 아래에는 이미 벌어진 밤송이도 있었지만, 아직 단단히 닫힌 밤송이도 많았다. 떨어진 밤만 줍기에는 아쉬워서, 친구들과 함께 밤송이를 발로 밟아 억지로 벌려 보기도 했다. 밤송이가 쉽게 열리지 않으면 신발 밑창으로 이리저리 눌러보고, 조금 벌어진 틈이 생기면 안에 든 밤을 꺼내려고 손을 댔다. 그러다 보면 밤송이 가시는 신발과 바지에 잘 달라붙었고, 손에도 몇 번씩 찔렸다.
가시에 찔리는 일은 밤을 줍는 날이면 으레 따라오는 일이었다. 밤송이를 들고 다니다가 손바닥에 가시가 박히기도 했고, 바지에 붙은 가시를 떼다가 손끝이 따끔거릴 때도 있었다. 그래도 밤을 하나 더 찾았다는 기분이 더 컸기 때문에, 아픈 일은 금세 잊었다. 밤나무 아래에서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누가 더 큰 밤을 주웠는지 보여 주던 일도 기억난다. 밤은 먹을거리였지만, 그때는 줍는 과정 자체가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설익은 밤은 겉모양만으로는 잘 구별하기 어려웠다. 껍질을 벗기고 한 입 베어 문 뒤에야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 때가 많았다. 떫은맛이 입안에 퍼지면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밤을 버리기에는 아까웠다. 어린 시절에는 잘 익은 밤인지, 아직 덜 익은 밤인지보다 손에 밤 하나를 들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떫은맛을 한 번 겪고도 다음날이면 다시 밤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떫은맛까지 함께 남은 가을 간식
밤은 지금도 삶거나 구워 먹는 익숙한 간식이지만, 어린 시절 내게 밤은 손으로 직접 줍고 껍질을 까서 먹는 열매였다. 겉껍질을 벗기다가 손이 아프기도 했고, 얇은 속껍질이 잘 떨어지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그래도 껍질을 벗긴 뒤 드러나는 노란빛 속살을 보면, 조금 전까지 가시에 찔렸던 일은 잊게 됐다.
잘 익은 밤은 달고 포슬포슬했지만, 설익은 밤은 떫고 아릿한 맛이 남았다. 지금이라면 맛없는 밤은 굳이 먹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친구들과 함께 주운 밤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끝까지 먹어 보게 됐다. 맛있어서 먹은 밤도 있었고, 떫은맛에 실망하면서도 그냥 먹은 밤도 있었다. 그렇게 여러 번 밤을 따고 먹으며, 밤은 가을이면 당연히 찾아가는 열매가 됐다.
어른이 된 뒤에 밤 이야기를 읽다가 토정 이지함 선생과 밤에 얽힌 야사를 접한 적이 있다. 지네를 먹고 밤으로 독을 중화했다는 이야기와, 밤 모양으로 깎은 나무 때문에 결국 죽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과장된 설화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밤이라는 열매가 단순한 간식만이 아니라 오래전 이야기 속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고 등장한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내게는 밤송이 가시와 떫은맛으로 남은 열매가,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이야기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줍는 사람이 드문 고향의 밤
작년 추석에 시골 집을 찾았을 때, 어머니께서는 밤이 떨어져도 이제는 주워 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어린 시절에는 밤나무 아래를 먼저 찾아가던 아이들이 있었고, 떨어진 밤을 누가 먼저 줍는지가 작은 관심사였다. 그런데 이제는 밤이 떨어져도 그대로 남는 일이 많다는 말이 낯설면서도 조금 쓸쓸하게 들렸다.
예전에는 없어서 못 먹는다고 느꼈던 밤이 이제는 줍는 사람도 많지 않은 열매가 됐다. 밤의 맛이 달라진 것은 아닐 텐데, 밤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생활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가시에 찔리면서도 밤을 줍기 위해 밤나무 아래를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밤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도 예전처럼 땅을 자세히 보게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음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 밤이 떨어진 모습을 보게 된다면, 몇 알 쯤은 주워 보고 싶다. 잘 익은 밤을 찾는 일보다도, 밤송이를 발로 밟고 신발과 바지에 가시를 묻히던 어린 시절을 다시 떠올려 보고 싶기 때문이다. 내게 밤은 특별한 효능이나 오래된 설화보다 먼저, 가을 햇살 아래 친구들과 밤나무 밑을 돌아다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떫은맛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다음날 다시 밤나무를 찾던 그 시절의 가을이, 지금도 밤이라는 이름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