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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산속 부대에서 나눠 마시던 칡차

by jamkkum 2026. 10. 6.

근처 야산 산책길에서 본 칡 넝쿨
근처 야산 산책길에서 본 칡 넝쿨

칡즙과 칡차는 산행을 가거나 산 근처 관광지에 들를 때마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음료였다. 길가의 판매대나 관광지 가게에서 칡즙을 보면, 산에서 나는 뿌리로 만든 진한 음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내게 칡은 관광지에서 한 잔 사 마시는 음료보다, 군 복무 시절 민통선 안 산속 부대에서 직접 달여 마시던 차의 기억으로 더 또렷하게 남아 있다.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은 깊은 산속에 자리한 부대였다. 산행을 하러 잠시 찾는 곳과 달리, 군 복무 중의 산은 훈련과 작업을 위해 매일 오르내려야 하는 생활공간이었다. 주변에는 가게나 매점에 쉽게 갈 수 없는 때도 있었고, 산에서 나는 식물은 선임들이 하나둘 알려 주는 이름을 통해 조금씩 익숙해졌다. 칡차와 오미자차, 더덕과 도라지, 취나물과 달래, 다래와 머루는 그 시절 산을 단순한 훈련 장소가 아니라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공간으로 기억하게 했다.

산속 부대에서 익힌 계절의 이름

민통선 안의 산속 부대는 주변이 온통 자연에 가까웠다. 봄과 여름에는 훈련이나 작업을 나가며 산길을 걷는 일이 많았고, 계절에 따라 길가의 모습도 달라졌다. 나는 처음부터 식물 이름을 많이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선임들이 산길을 걸으며 알려 주는 말을 옆에서 듣고, 그때그때 본모습을 기억하는 정도였다.

 

선임들은 산에서 나는 식물을 보면 이름을 말해 주거나, 무엇을 먹어 본 적이 있는지 이야기하곤 했다. 칡, 오미자, 더덕, 도라지, 취나물, 달래, 다래, 머루 같은 이름들은 그렇게 산길에서 들었다. 그때는 정확한 식물 정보를 배우는 시간이라기보다, 군장을 메고 걷다가 잠시 멈춰 선임들의 말을 듣는 순간에 가까웠다. 그래도 이름 하나를 알고 나면 다음에 비슷한 식물을 볼 때 조금 더 눈에 들어왔다.

 

부대가 워낙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산은 늘 가까이 있는 풍경이었다. 훈련이 힘들고 작업이 길게 이어지는 날도 많았지만, 계절이 바뀌면 길가의 식물도 달라졌다. 그 산속에서 마주친 식물들은 군 생활의 고된 시간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훈련을 나가는 길,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저녁이 가까워지는 산길의 기억 속에 식물 이름이 하나씩 섞여 있었다.

굵은 칡뿌리 하나를 캐내던 날

그중에서도 칡은 뿌리가 굵게 자라는 식물로 기억된다. 부대 근처에서 칡뿌리를 캐는 일은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땅속 깊이 이어진 뿌리를 꺼내는 과정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괜찮은 크기의 뿌리 하나를 캐내고 나면 모두가 한마디씩 보태며 뿌듯해하곤 했다. 그때의 칡은 차 재료이기 전에, 힘을 들여야 겨우 모습을 드러내는 땅속의 뿌리였다.

 

뿌리를 캐낸 뒤에는 깨끗이 씻고 잘게 나누어 말려 두었다. 낮 동안 훈련이나 작업을 마친 뒤, 저녁이 되면 말린 칡으로 차를 끓였다. 지금 생각하면 특별한 음료를 만들었다기보다, 부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저녁 시간을 조금 다르게 보내는 일이었다. 차가 끓는 동안에는 하루 동안 쌓인 피로와 긴장이 잠시 느슨해지는 것 같았고, 식기에 담긴 칡차는 음료수 대신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칡차를 식기에 담아 돌려가며 나눠 마시던 시간도 기억난다. 산속 부대의 저녁은 도시에서 보내는 저녁과 달랐다. 하루 종일 움직인 뒤라 조용한 시간이 더 반가웠고, 따뜻한 차 한 그릇을 함께 나누는 일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 차가 아주 맛있어서라기보다, 산에서 캐낸 뿌리가 저녁의 음료가 되고 그것을 함께 마시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관광지의 칡즙과 다른 기억

군 복무를 마친 뒤에도 산행이나 관광지에서 칡즙과 칡차를 여러 번 마셨다. 관광지에서 만나는 칡즙은 이미 컵에 담겨 있고, 칡차도 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음료를 마실 때면 민통선 산속 부대에서 마시던 칡차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관광지의 칡즙은 산길을 걷다 잠시 쉬며 마시는 음료에 가깝지만, 군대에서의 칡차에는 하루의 훈련과 작업, 산속의 저녁 시간이 함께 들어 있다.

 

최근에도 말린 칡을 우린 차를 사서 마신 적이 있다. 맛과 향은 제품마다 조금씩 달랐고, 어떤 차는 기억 속 군대의 칡차보다 더 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차의 맛만으로는 예전 기억을 그대로 되살릴 수 없었다. 군장을 내려놓고, 하루 동안 땅을 파고 산길을 오르내린 사람들과 함께 차를 나누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때의 칡차가 더 따뜻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내게 칡은 산에서 나는 뿌리라는 설명보다, 군 생활의 저녁을 떠올리게 하는 식물이다. 굵은 뿌리 하나를 캐내고 서로 크기를 보며 웃던 일, 씻어 말린 재료를 저녁에 끓이던 일, 식기에 담긴 차를 돌려가며 마시던 시간이 함께 기억된다. 지금 산 근처에서 칡즙을 보면 관광지의 음료보다 먼저, 민통선 안 산속 부대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던 칡차의 김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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