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에서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다 보면 어귀 상점에 마즙을 파는 곳이 꼭 한두 군데 있습니다. 저도 그 앞을 지나치지 못하고 몇 번 사 마셨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정력과 기력에 좋다는 말에 뭔가 진하고 구수한 맛을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거의 맛이 없어 첫 모금에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냥 웰빙 음료 정도로만 여겼는데, 나중에 약초를 공부하면서 마가 수천 년 된 약재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보게 됐습니다.
산약(山藥)이라는 이름에 담긴 뜻과 마의 성분
마는 한자로 산약(山藥)이라고 씁니다. 산에서 나는 약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약초 강의를 들을 때 교수님께 처음 이 이름을 들었는데, 그냥 흔한 채소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역사 깊은 약재였다는 게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본초강목』에는 이 이름을 피하라는 임금의 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결국 지금도 산약이라는 이름이 주로 쓰이는 걸 보면 어명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 셈입니다.
마의 핵심 성분은 뮤신(mucin)입니다. 뮤신이란 당단백질의 일종으로, 점액성 물질을 구성하는 성분인데 위장 점막과 장 내벽을 코팅해 외부 자극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를 잘랐을 때 실처럼 늘어나는 그 끈적한 물질이 바로 뮤신입니다. 대장에서는 윤활유처럼 작용해 장 운동을 도와줍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마는 변비에도 좋고, 설사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게 가능한 이유가 바로 조리법의 차이입니다. 생마를 그대로 갈아먹으면 뮤신 성분이 살아 있어 장 내벽을 부드럽게 코팅하고 변비 완화에 도움이 됩니다. 반대로 말려서 가루를 내면 수렴(收斂) 작용이 강해집니다. 수렴 작용이란 조직을 수축시켜 과도한 분비와 출혈을 억제하는 효과를 말하는데, 이것이 설사를 멎게 하는 원리입니다. 같은 재료가 조리법만 달리해도 정반대 효능을 내는 경우는 흔치 않아 처음 알았을 때 꽤 놀랐습니다.
마의 주요 효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변비 완화: 생마를 갈아 먹거나 바나나와 함께 섭취
- 설사 억제: 말려서 가루 낸 것을 물과 함께 복용
- 폐·기관지 보호: 건조한 기침과 피부 건조에 도움
- 관절 및 골격 강화: 허리와 무릎이 쉬이 피로해지는 증상에 유익
- 신경 안정 및 기억력: 신기(腎氣)를 보하고 건망증 완화
한국식품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마에는 디오스게닌(diosgenin)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디오스게닌이란 스테로이드계 사포닌의 일종으로, 호르몬 전구물질과 구조적으로 유사해 생식 기능 및 내분비계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성분입니다(출처: 한국식품연구원). 마가 정력에 좋다는 말이 단순한 민간 속설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아(珠芽)로 직접 키워보니 알게 된 것
저는 마를 먹어보기만 한 게 아니라 직접 키워본 경험도 있습니다. 마의 덩굴에는 주아(珠芽)라는 것이 달리는데, 주아란 줄기 마디에 맺히는 작은 구슬 모양의 눈으로 영양 번식 기관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씨앗처럼 새 개체로 자라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구매해서 삶아 먹어보니 식감과 맛이 고구마와 비슷했습니다. 작은 크기에 비해 담백하고 은은한 단맛이 있어 밥에 넣어 짓기도 했는데 꽤 먹을 만했습니다. 그런데 먹고 남긴 주아 몇 개를 방치해 뒀더니 봄이 되자 줄기가 올라왔습니다. 그게 신기해서 아파트 울타리와 하천 둑에 슬쩍 뿌려뒀는데, 가을에는 줄기가 올라오고 주아까지 달렸습니다. 화단 정비로 다 베어냈는데도 올해 다시 그 자리에서 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마가 산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이라는 것을 제가 직접 확인한 셈입니다. 일반적으로 마는 깊은 산에서나 자라는 식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아파트 울타리 토양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번식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생마를 다루거나 생즙을 마실 때 뮤신 성분이 피부 점막을 자극해 두드러기나 가려움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마 껍질을 맨손으로 벗기다가 손이 간지러웠던 적이 있어서, 처음 다루시는 분들은 장갑을 끼고 작업하시는 게 좋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알레르기 유발 가능 식품을 관리하고 있으므로, 체질에 따라 반응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 목적으로 꾸준히 드시려면 생즙보다 말린 가루 형태가 더 안정적입니다. 생즙은 체질에 따라 복통이나 소화 장애를 일으킬 수 있지만, 건조 가루는 이런 자극이 상당히 줄어듭니다. 하루 10g 정도를 물에 타거나 죽에 넣어 꾸준히 먹는 것이 가장 무난한 방법으로 보입니다.
마는 '산에서 나는 장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영양이 풍부한 식재료입니다. 마즙을 처음 마셨을 때의 실망스러운 맛과 달리, 알면 알수록 쓸 곳이 많은 재료라는 것을 저는 직접 먹고 키우면서 확인했습니다. 고향이 마 산지로 유명한 곳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괜히 반가웠던 것도, 어쩌면 그 강인한 생명력과 오래된 쓰임새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체력이 떨어지거나 소화기 건강이 신경 쓰인다면, 주방 한쪽에 마 가루 한 봉지를 들여놓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영양 조언이 아닙니다. 심한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 의료인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마'는 산(山)에 나는 약(藥)이다! - 한동하의 식의보감 (https://www.youtube.com/watch?v=Zv1U0y5ScN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