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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굣길 찔레나무에서 먼저 꺾던 봄의 새순

by jamkkum 2026. 8. 20.

근처 산에서 본 찔레
근처 산에서 본 찔레

약초 공부를 하며 가장 자주 떠올리는 것은, 시골에서 흔하게 보던 풀과 나무가 저마다 이름을 가진 식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찔레나무도 그렇다. 어린 시절의 찔레나무는 약초원에서 배운 식물이 아니라 논둑과 밭둑, 하천 둑에 늘 있던 가시나무였다. 봄이면 그 가지에서 올라오는 여린 새순을 친구들과 꺾어 먹었고, 가을에는 붉은 열매를 보면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뒤 찔레나무라는 이름을 다시 배우니, 고향의 등굣길과 친구들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찔레나무를 귀한 식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나무, 조금만 자라면 순이 질겨지는 나무, 길가에 너무 흔해서 굳이 이름을 묻지 않는 나무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금은 그 흔함 자체가 오래된 기억의 배경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논둑과 밭둑에 늘 있던 가시나무

시골에서 살 때 찔레나무는 멀리 찾아가야 만나는 나무가 아니었다. 논둑과 밭둑, 하천 둑을 따라 걷다 보면 가지가 옆으로 뻗은 찔레나무를 자주 봤다. 길가에는 여러 풀과 나무가 섞여 있었지만, 찔레나무는 가시가 있어 가까이 갈 때면 조금 조심하게 됐다. 어린 내게는 꽃의 이름이나 나무의 분류보다도, 손을 잘못 대면 가시에 찔릴 수 있는 식물이라는 인상이 더 강했다.

 

봄이 되면 찔레나무는 전과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가지 끝에서 여린 순이 올라오고, 겨울 동안 거칠어 보이던 나무에도 초록빛이 생겼다. 새순이 충분히 부드러울 때를 놓치지 않는 일이 중요했다. 조금만 더 자라면 질겨져 먹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의 크기와 색을 보며 먹을 만한 것을 골랐던 것 같다.

 

등굣길에 통통하게 오른 새순을 발견하면 친구들끼리 먼저 꺾겠다고 다투기도 했다.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 어느 쪽 가지의 순이 더 여린지 말하며 잠시 길가에 멈췄다. 학교에 가는 길은 매일 비슷했지만, 봄의 찔레순이 보이는 날에는 작은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참 소박한 놀이였다.

 

찔레나무의 어린순은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꺾어야 했다. 가지가 단단해 보이는 곳보다 막 올라온 연한 부분을 찾으려 했고, 손가락을 가까이 댈 때도 망설였다. 가시에 한 번 찔리면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린 순을 하나 더 찾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봄의 들판에서는 그런 일이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찔레나무는 가지에 가시가 있고, 봄에는 흰색 또는 연한 붉은색 꽃이 피며 가을에는 붉은 열매가 익는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찔레나무는 꽃보다 새순이 먼저였지만, 이제는 봄의 순과 하얀 꽃, 가을의 열매가 한 나무의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름을 안다고 해서 그 나무를 모두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 오래 바라보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찔레나무는 내게 들판의 일부였다. 논둑에는 풀이 많았고, 밭둑에는 다른 나무도 있었으며, 하천 둑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가 많았다. 그 안에서 찔레나무는 너무 흔해서 특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흔한 나무가 등굣길의 시간과 친구들의 목소리, 가시를 피하던 손끝까지 함께 남긴 식물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떫고 들큼했던 봄의 맛

찔레 새순의 맛은 지금도 정확한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떫은 느낌이 먼저 있었고, 그 안에 은근히 들큼한 맛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과일처럼 달거나 반찬처럼 익숙한 맛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른다. 길가에서 꺾어 바로 맛보는 새순은, 집에서 먹는 음식과 전혀 다른 종류의 맛이었다.

 

우리는 순이 너무 자라기 전에만 먹으려 했다. 조금만 굵어져도 질기고 거칠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왜 그런 차이가 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연한 것은 먹기 좋고, 자란 것은 씹기 힘들다는 정도로 알았다. 봄이 지나갈수록 찔레나무는 새순을 꺾어 먹는 나무보다 가시 많은 덤불처럼 다시 보이곤 했다.

 

찔레나무 열매는 새순만큼 많이 먹은 기억이 없다. 가을이 되면 붉은 열매가 달려 있는 모습은 봤지만, 산딸기나 오디, 앵두처럼 친구들과 많이 따 먹지는 않았다. 단맛이 강했다면 분명 여러 번 찾았을 텐데, 그런 기억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내게는 맛있는 열매로 남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찔레 열매는 새순과 다른 방식으로 기억된다. 새순은 등굣길에 친구들과 먼저 찾던 봄의 맛이고, 열매는 가을이 되어도 나무에 남아 있던 붉은 점에 가깝다. 같은 나무에서 나온 것이지만, 내가 만난 시간과 관심이 달랐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열매보다 눈앞의 산딸기나 오디에 더 마음이 갔을 것이다.

 

약초 공부를 하며 찔레 열매가 영실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는 설명을 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많이 먹지 않았던 붉은 열매에 별도의 이름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름을 알았다고 해서 이제 열매를 직접 먹거나 달여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실제로 아는 것은 찔레나무의 새순을 맛본 기억과, 열매를 많이 먹지 않았던 기억이다.

 

지금 생각하면 찔레순을 먹던 경험도 장소와 시절이 함께 만든 기억이다. 흙길을 걷다가 친구가 먼저 가지를 가리키고, 가시에 찔리지 않게 순을 꺾고, 잠시 맛을 본 뒤 다시 학교 쪽으로 걸었다. 새순 하나의 맛보다도 그 짧은 흐름이 오래 남아 있다. 찔레나무는 내게 봄날의 간식이면서, 등굣길에 잠시 멈추게 했던 나무다.

이름을 알고 다시 보는 고향의 길

약초 공부를 하면서 식물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말은, 예전의 기억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뜻은 아니다. 찔레나무는 여전히 내게 가시가 많은 길가의 나무이고, 봄에 여린 순이 올라오던 나무다. 다만 이제는 꽃이 피고 열매가 익는 계절도 함께 떠올리게 됐다. 예전에는 새순이 질겨지면 관심이 끝났는데, 지금은 그 뒤의 나무 모습도 생각한다.

 

찔레나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나무라고 느껴졌지만, 내가 실제로 기억하는 장소는 분명하다. 논둑과 밭둑, 하천 둑, 그리고 학교로 가던 길이다. 이름은 나중에 배웠지만, 식물의 감촉과 가시의 날카로움, 새순의 맛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식물 이름은 늦게 붙었지만 기억은 먼저 있었던 셈이다.

 

이제 시골이나 산길에서 붉은 열매가 달린 가시나무를 본다고 해서 그것을 바로 찔레나무라고 단정하지는 않으려 한다. 비슷한 식물이 있을 수 있고, 열매와 잎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봄에 여린 순이 올라온 가시나무를 보면, 예전의 등굣길과 친구들의 다툼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찔레나무는 내게 특별한 약재가 아니라, 흔한 나무를 오래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다. 어린 시절에는 귀찮고 성가신 가시나무처럼 여겼고, 봄에는 잠시 새순을 맛보는 나무로 만났다. 시간이 지나 이름과 꽃, 열매의 계절을 알게 되면서 그 나무는 고향 풍경의 한 부분으로 더 선명해졌다.

 

어릴 때는 길가의 풀과 나무를 하나하나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그때 지나쳤던 식물에도 각자 이름과 모습, 계절의 순서가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운다. 찔레나무는 그 변화가 가장 잘 남아 있는 식물 중 하나다. 봄의 여린 순 하나가, 오래전 고향길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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