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초를 공부하면서 가장 놀라운 점은, 시골에서 흔하게 보던 풀과 화초, 나무와 열매가 저마다의 이름과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교수님이 소개한 찔레나무도 그랬다. 찔레나무는 민들레처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라고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 내게는 논둑과 밭둑, 하천 둑에 늘 있던 가시나무에 가까웠다. 너무 흔해서 이름을 다시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무가 강의에서 따로 소개되자, 오래전 등굣길과 친구들이 함께 떠올랐다.
내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봄의 찔레순이다. 동네 아이들과 여린 새순을 꺾어 겉껍질을 벗기고 먹곤 했다. 떫으면서도 은근히 들큼한 맛이 났던 것 같고,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손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던 기억도 남아 있다. 반면 찔레 열매는 많이 보았지만, 산딸기나 오디, 앵두처럼 즐겨 따 먹었던 열매는 아니었다. 약초 공부를 하며 영실이라는 이름을 들은 뒤에야, 어린 시절 지나쳤던 열매가 새롭게 생각났다.
논둑과 밭둑의 가시나무
시골에 살 때 찔레나무는 특별히 찾아야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었다. 논둑과 밭둑, 하천 둑을 따라 자라는 모습이 늘 눈에 들어왔다. 길가에 엉켜 자란 가시나무 정도로 보았고, 꽃이 피거나 열매가 달리는 때에도 이름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그만큼 생활 가까이에 있던 나무였다.
봄이 되면 찔레나무에서 올라오는 여린 순을 찾았다. 새순이 통통하게 오른 자리를 발견하면 친구들끼리 먼저 꺾겠다고 다투기도 했다. 등굣길에 그런 나무를 만나면 잠시 걸음을 멈추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참 소박한 놀이였지만, 당시에는 봄에만 할 수 있는 작은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여린 순만 골라 꺾었다. 순이 조금만 자라도 질겨져 먹기 힘들었기 때문에, 막 올라온 듯한 부분을 찾으려 했다. 껍질을 벗겨 입에 넣으면 떫은맛이 먼저 느껴지고, 뒤에는 은근히 들큼한 맛이 남았던 것 같다. 정확한 맛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가시를 피하던 손끝의 긴장과 친구들 사이의 장난은 지금도 또렷하다.
찔레순을 먹던 일은 당시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길가나 하천 둑의 식물을 함부로 꺾거나 먹지 않는다. 비슷하게 보이는 식물이 있을 수 있고, 관리나 오염 여부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찔레순은 등굣길에서 만난 봄의 기억으로만 남겨 두고 싶다.
약초 공부를 하며 찔레나무를 다시 보니, 예전에는 그냥 귀찮고 성가신 가시나무로만 보았던 식물이 달리 느껴진다. 그렇다고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모든 가시나무가 찔레나무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논둑과 밭둑에 흔하던 가시나무, 봄마다 새순을 찾던 기억이 찔레나무라는 이름과 이어진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많이 먹지 않았던 찔레 열매
찔레나무의 열매는 어릴 때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열매를 많이 따 먹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내 기억 속 찔레 열매는 산딸기나 오디, 앵두처럼 먼저 손이 가는 열매가 아니었다. 만약 달고 맛있었다면 친구들과 더 많이 따 먹었을 텐데, 그런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내게는 단맛이 강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교수님이 찔레 열매를 영실이라고 소개했을 때 더 낯설게 느껴졌다. 열매는 이미 알고 있던 풍경의 일부였지만, 영실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말에 가까웠다. 약초 공부를 하며 알게 된 이름 하나가, 어릴 적에는 그냥 지나쳤던 열매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나는 찔레 열매를 많이 먹어 본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 맛이나 쓰임을 내 경험처럼 단정해 말할 수는 없다. 산딸기와 오디, 앵두는 많이 따 먹었던 기억이 있어 맛이 먼저 떠오르지만, 찔레 열매는 가지의 가시와 붉게 익은 모습 정도가 더 선명하다. 같은 시기에 보던 열매라도 어린 내게 어떤 열매는 먹을거리였고, 어떤 열매는 그저 길가의 풍경이었다.
이제는 영실이라는 이름을 알게 됐다고 해서 열매를 따서 생으로 먹거나 달여 먹어 보려 하지는 않는다. 식물의 정확한 종류와 자라는 환경, 채취가 허용되는 장소인지 확인하지 않은 열매를 먹는 일은 피하는 편이 맞다. 내게 영실은 직접 확인해야 할 먹을거리라기보다, 찔레순만 기억하던 나무에 열매의 계절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 이름으로 남아 있다.
이름을 알고 달라진 둑길
약초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익숙한 식물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경험이다. 어린 시절에는 찔레나무를 봄에 새순을 찾는 가시나무로만 알았다. 이제는 흰 꽃과 열매가 이어지는 한 나무의 계절을 생각하게 된다. 이름을 안다고 해서 그 식물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전처럼 아무 이름 없는 가시나무로 지나치지는 않게 됐다.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며, 하천 둑에 흔하던 환삼덩굴도 함께 떠올랐다. 어린 시절에는 귀찮고 성가신 잡초나 가시나무로만 여겼던 식물들이 각자 다른 이름과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지금의 몸에 적용하거나, 어떤 식물을 직접 이용할 방법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오래된 풍경을 다시 살피게 하는 계기로 받아들이고 싶다.
찔레나무는 내게 봄의 새순, 등굣길의 친구들,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 하던 손끝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나무다. 영실이라는 이름은 그 나무가 꽃과 열매를 거쳐 다른 계절도 보낸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려 주었다. 예전에는 흔해서 눈여겨보지 않았던 나무가, 이제는 한 계절의 맛과 여러 기억을 품은 나무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