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유난히 더웠던 날 저녁에 친구 회사 근처에서 만났다. 퇴근 시간에 맞춰 나갔는데 해가 늦게까지 지지 않아 식당에 들어가기 전부터 등에 땀이 찼다. 밥을 먹고 나온 뒤 카페까지 걷는 짧은 거리도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더위에 지친 채 에어컨이 잘 나오는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음료를 하나씩 주문하고 나서야 조금 살 것 같았다.
그날 카페에서는 특별한 약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근황을 나누고, 회사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식물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가 길가와 하천변에서 흔히 보던 율초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그때까지도 그 덩굴풀이 따로 이름을 가진 식물이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더운 여름밤의 카페에서 들은 짧은 이야기는, 이후 내가 약초와 생활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카페의 시원한 공기와 낯선 식물 이름
친구가 처음 율초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 머릿속에는 하천가와 들판에 뒤엉켜 자라던 덩굴풀이 떠올랐다. 여름이면 다른 풀과 나무를 휘감고 올라가며 무성해지는 식물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그런 풀을 이름 없이 지나쳤다. 길가에 많고, 손을 대면 거칠어 보이고, 다른 식물을 감싸며 자라는 덩굴 정도로만 생각했다.
친구는 누군가에게서 들은 율초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건강과 관련된 이야기까지 함께 나왔지만, 나는 그 말의 사실 여부보다 우리가 늘 보던 풀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먼저 신기했다. 하천변과 들판에서 흔히 보이던 식물이 율초라고도 불린다는 말을 듣자, 이전에는 그저 무성한 덩굴로만 보이던 풍경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율초는 환삼덩굴 또는 한삼덩굴이라고도 불리는 한해살이 덩굴풀로 알려져 있다. 하천변과 녹지대, 길가에서 자라며 강한 번식력으로 다른 식물을 휘감는 모습 때문에 환경 위해식물로 언급되기도 한다. 내가 여름마다 보았던 것도 바로 그런 모습에 가까웠다. 이름을 알기 전에는 그저 길가의 덩굴이었는데, 이름 하나를 들은 뒤에는 산책길에서 다시 보게 되는 식물이 됐다.
처음 받아 본 건조 율초

카페에서 들은 이야기가 계기가 되어, 나는 약초와 식물에 관한 내용을 조금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인터넷으로 건조한 율초를 주문해 받아 본 적이 있다. 하천가에서 보던 초록색 덩굴과 달리, 손에 들어온 율초는 말라 있었고 낯선 풀 향이 났다. 길가에서 흔히 보던 식물이 말린 상태로 눈앞에 놓이자, 내가 알고 있던 풍경과 다른 물건처럼 느껴졌다.
처음 율초를 다뤘을 때는 어떤 식물인지 잘 모르고 시작한 터라, 여러 가지가 서툴렀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말린 식물을 어떻게 다루면 되는지조차 익숙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식물을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카페에서 들은 이야기에 생긴 호기심을 따라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한 번 관심을 갖고 나니 하천 근처에서 보던 덩굴풀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게 됐다.
건조한 율초에서 나는 향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 맡았던 소죽 냄새를 떠올리게 했다. 정확히 같은 냄새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낯선 식물 향 속에서 오래전 시골의 기억이 겹쳐졌다. 어릴 때는 소죽을 끓이는 일이 생활의 한 부분이었고, 그 냄새는 집 주변과 축사 근처에서 자연스럽게 맡을 수 있었다. 말린 율초를 보며 그 냄새를 떠올렸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조금 뜻밖이었다.
민들레 이야기에 웃음이 났던 밤
카페에서 이야기를 이어 가다 보니 율초뿐 아니라 민들레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하천 근처에 많은 식물과 가시가 많은 엉겅퀴 이야기를 꺼냈고, 친구는 자기 어머니가 민들레를 유난히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민들레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동네에서 발견하면 늘 관심을 두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친구도 꽤 익숙한 일처럼 말했다.
친구 말로는 어머니가 민들레를 워낙 열심히 챙기셔서, 동네에 있던 민들레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과장이 섞인 말일 수도 있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웃음이 났다. 봄이면 길가와 빈터에서 쉽게 보던 민들레를 두고, 한 사람이 그만큼 열심히 관심을 가졌다는 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친구 어머니에게 민들레는 그냥 노란 들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생활 속에서 가까이 두고 보던 식물이었던 것이다.
민들레도 율초처럼 내게는 너무 흔해서 자세히 보지 않았던 식물이었다. 봄이면 길가에 피고, 꽃이 지면 하얀 씨앗이 바람에 날리는 풀 정도로만 기억했다. 그러나 카페에서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같은 식물도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기억과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길가의 노란 꽃이었던 민들레가, 친구 어머니에게는 오랫동안 챙겨 온 식물이었다.
길가의 덩굴과 꽃을 다시 보게 된 뒤
그날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더위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밤인데도 공기가 후텁지근했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여름 풀들이 길가에 무성했다. 하지만 카페에 들어가기 전과 나올 때의 풍경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이전에는 이름 없이 지나쳤을 덩굴과 꽃이, 친구와 나눈 이야기 뒤에는 한 번 더 눈에 들어왔다.
이후 산책을 하거나 하천변을 지날 때면 율초로 불리는 덩굴풀을 보면 잠시 멈춰 보게 됐다. 민들레를 볼 때도 그날 카페에서 들었던 친구 어머니의 이야기가 떠오르곤 했다. 식물을 자세히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름을 알고 기억 하나가 더해지면 같은 길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은 알게 됐다.
내게 율초는 더운 여름밤 카페에서 처음 들은 낯선 식물 이름이다. 그리고 민들레는 그날 친구와 웃으며 들었던 어머니의 이야기와 함께 떠오르는 노란 꽃이다. 길가에 흔한 식물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눈여겨보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하천변의 덩굴과 빈터의 민들레를 보면, 더운 여름밤 에어컨이 잘 나오던 카페와 친구가 들려주던 식물 이야기가 함께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