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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름을 따라오던 마와 아파트 울타리에 다시 올라온 줄기

by jamkkum 2026. 9. 30.

산행을 가거나 산 근처 관광지에 들르면 마즙을 파는 곳을 자주 보았다. 컵에 담긴 마즙은 뿌옇고 걸쭉해서 언뜻 보면 진하고 고소한 맛이 날 것 같았다. 정력이나 기력 회복에 좋다는 말을 들으면, 등산 뒤에 마시는 음료로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산행을 마치고 한 잔씩 마셔 본 적이 여러 번 있다.

 

하지만 내게 마즙의 맛은 기대와 조금 달랐다. 고소하거나 달콤한 맛이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밍밍한 미숫가루처럼 느껴졌다. 몸에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끝까지 마시기는 했지만, 그 안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고 왜 좋다고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당시의 마는 고향의 특산품도, 밭에서 기르는 작물도 아닌, 산 근처에서 한 번쯤 사 마시는 걸쭉한 음료에 가까웠다.

관광지에서 마시던 뿌연 마즙

마즙은 산 근처 관광지나 휴게 공간에서 마주칠 때가 많았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목이 마를 때면, 차가운 음료 대신 마즙을 권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컵 안의 액체는 우유처럼 희지는 않았지만, 물보다 훨씬 탁하고 걸쭉해 보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소한 곡물 음료나 진한 미숫가루 같은 맛을 예상했다.

 

막상 마셔 보면 맛은 생각보다 담백했다. 특별히 달지도 않았고, 강한 향이 남는 것도 아니었다. 입안에서는 걸쭉한 느낌이 먼저 남았고, 맛 자체는 밍밍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주변에서는 몸에 좋다고 말했고, 나 역시 그 말만 듣고 마즙을 한 잔씩 비웠다. 지금 생각하면 맛을 좋아해서 마신 것보다, 산행을 하고 난 뒤에 한 잔 마시면 좋을 것이라는 분위기 때문에 마신 경우가 더 많았다.

 

그때의 나는 마즙을 마시면서도 마가 어떤 식물인지 자세히 생각하지 않았다. 뿌리채소로 만든 음료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고, 산약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컵 하나에 담긴 마즙은 그냥 관광지에서 만나는 음료였고, 내 고향과 연결된 식물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마를 알게 되는 과정은 산길의 음료에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고향과 아파트 울타리의 풍경으로 이어졌다.

마 하면 따라붙던 고향 이름

약초를 공부하면서 교수님에게 마가 산약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는 설명을 처음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관광지에서 마셨던 마즙과 밭에서 나는 뿌리채소, 약초 공부에서 들은 산약이라는 이름이 하나로 이어졌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마가 내 고향을 대표하는 특산품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었다.

 

고향에 살 때는 동네 어른들이 밭에서 캐는 뿌리채소 가운데 하나로만 생각했다. 밭에서 자라는 여러 작물 중 하나였고, 특별히 다른 지역과 연결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난 뒤에는 마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고향 이름이 따라붙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늘 보던 밭의 작물이 다른 사람에게는 특정 지역을 떠올리게 하는 특산품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반갑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에는 고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지 잘 알지 못한다. 마도 그랬다. 동네 어른들이 밭에서 캐는 뿌리, 관광지에서 즙으로 마시는 재료, 약초 수업에서 산약이라고 부르는 식물이라는 여러 모습이 나중에서야 연결됐다. 그래서 지금은 마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고향 이름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풍경이 다른 곳에서는 고향을 대표하는 이름이 된다는 사실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조금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주아를 뿌린 자리에서 다시 올라온 마

아파트 울타리에서 자라는 마
아파트 울타리에서 자라는 마

마의 생명력을 실감한 것은 주아를 통해서였다. 주아가 영양이 풍부하다는 말을 듣고 구매해 삶아 먹거나 밥을 지을 때 넣어 먹은 적이 있다. 내게는 고구마와 비슷한 맛으로 느껴졌다. 그러다 작년에 먹고 남은 주아를 따로 치우지 않고 두었는데, 봄이 되자 그 자리에서 줄기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남겨 둔 작은 주아에서 정말 줄기가 자랐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래서 남아 있던 주아를 아파트 울타리 주변과 하천 둑에 그냥 뿌려 두었다. 가을이 되자 그 자리에서 줄기가 올라오고, 다시 주아까지 달린 모습을 보게 됐다. 화단을 정비하면서 줄기를 모두 베어냈는데도, 올해가 되자 같은 자리에서 다시 마 줄기가 올라와 잎을 피웠다. 한 번 올라온 줄기가 사라진 뒤에도 다음 계절에 다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며, 마가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식물처럼 느껴졌다.

 

이제 아파트 울타리 여러 곳에는 내가 뿌려 둔 주아에서 시작된 마가 자라고 있다. 산책하다가 낯선 사람들이 잎을 보고 이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마라고 설명하며, 고향의 특산품이 아파트 울타리에서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 뿌듯하게 이야기하곤 한다. 관광지에서 마시던 밍밍한 마즙으로만 기억했던 식물이, 이제는 고향의 이름과 봄마다 다시 올라오는 줄기까지 함께 떠올리게 하는 식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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