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45 고향 이름을 따라오던 마와 아파트 울타리에 다시 올라온 줄기 산행을 가거나 산 근처 관광지에 들르면 마즙을 파는 곳을 자주 보았다. 컵에 담긴 마즙은 뿌옇고 걸쭉해서 언뜻 보면 진하고 고소한 맛이 날 것 같았다. 정력이나 기력 회복에 좋다는 말을 들으면, 등산 뒤에 마시는 음료로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산행을 마치고 한 잔씩 마셔 본 적이 여러 번 있다. 하지만 내게 마즙의 맛은 기대와 조금 달랐다. 고소하거나 달콤한 맛이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밍밍한 미숫가루처럼 느껴졌다. 몸에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끝까지 마시기는 했지만, 그 안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고 왜 좋다고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당시의 마는 고향의 특산품도, 밭에서 기르는 작물도 아닌, 산 근처에서 한 번쯤 사 마시는 걸쭉한 음료에 가까웠다.관광지에서 마시던 뿌.. 2026. 9. 30. 어머니의 앞밭에서 자라던 부추와 겨울 내내 말리던 씨앗 부추는 어린 시절부터 식탁에서 가장 익숙하게 만나던 채소 가운데 하나였다. 어머니는 앞밭에 부추와 도라지, 우엉, 가지, 오이, 대파, 상추를 함께 심어 기르셨다. 밭에서 갓 뜯어온 채소는 계절마다 반찬이 되어 식탁에 올랐다. 그 가운데 부추는 특별히 눈에 띄는 작물이라기보다, 필요할 때마다 베어와 무침으로 만들고 전으로 부쳐 먹는 익숙한 잎이었다. 지금도 아내가 부추전을 부쳐 주는 날이면 어린 시절 집 부엌이 먼저 떠오른다. 밀가루 반죽에 부추를 듬뿍 넣고, 팬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지져내면 부추 향이 집안에 퍼졌다. 그 냄새를 맡으면 식사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부추무침과 부추전, 추어탕이나 고기를 먹을 때 곁들여 먹던 부추는 모두 다른 음식이었지만, 내 기억 속에서.. 2026. 9. 27. 맛은 밍밍했지만 잊히지 않던 논두렁의 뱀딸기 어린 시절 산과 들, 밭과 논두렁에는 뱀딸기가 흔했다. 풀숲 가까이에 빨갛고 동그란 열매가 보이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산딸기처럼 달거나 일반 딸기처럼 새콤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도, 손을 뻗기 전에는 늘 한 번쯤 주변을 살폈다. 이름에 뱀이 들어간 열매였기 때문이다. 뱀이 좋아하는 딸기인지, 열매를 따려다 뱀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어린 마음에는 이름부터 조금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빨간 열매는 눈에 잘 띄었다. 논두렁의 물기 있는 그늘이나 밭 가장자리에서 뱀딸기를 발견하면, 나는 나뭇가지로 주변을 먼저 휘휘 저어 본 뒤에야 손을 넣곤 했다. 맛은 기대와 달리 밍밍했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그 맛없는 열매도 그냥 따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뱀딸기는 맛있는 열매라서 기억나는 것이 아니.. 2026. 9. 23. 민통선 산길에서 맡던 더덕 향 더덕구이나 더덕무침은 시골 식당이나 산 근처 식당에서 여러 번 먹어 본 익숙한 음식이다. 고추장 양념을 입혀 구운 더덕은 향이 진하고, 반찬으로 나온 더덕무침은 밥과 함께 먹기 좋았다. 하지만 내게 더덕은 식당 상 위의 음식으로 먼저 기억되는 식물이 아니다. 더덕을 제대로 알게 된 곳은 군대였고, 더 정확히는 민통선 안의 산속 부대에서 훈련과 작업을 나가던 산길이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은 산속에 있던 부대였다. 봄이나 여름에 훈련 또는 작업을 나가면 늘 깊은 산길을 오르내려야 했다. 군장을 메고 걷는 길은 길었고, 쉬는 시간은 짧았다. 그런데 고참들은 산길을 가다가 더덕을 찾아내곤 했다. 때로는 더덕이나 산도라지라고 부르던 뿌리를 캐서, 가지고 다니던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내게 더덕은 그때부터 산속.. 2026. 9. 20. 의성을 지나며 보던 개나리, 연교라는 이름을 알기까지 개나리는 어린 시절부터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던 꽃이었다. 진달래와 함께 다른 꽃보다 먼저 노랗게 피는 개나리를 보면, 겨우내 움츠러들어 있던 풍경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학교 담장과 동네 울타리를 따라 노란 꽃이 번지면 봄이 왔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게 개나리는 특별한 식물 이름이라기보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계절과 함께 찾아오는 익숙한 봄빛이었다. 특히 개학을 앞두고 새 학년이 시작될 무렵, 개나리가 만개한 모습은 유난히 또렷하게 기억난다. 긴 겨울이 지나고 새 교실과 새 선생님, 달라질 친구들을 생각하던 때였다. 설렘과 낯섦이 함께 있던 시기에 학교 담장과 길가를 따라 피던 노란 꽃은 늘 먼저 봄을 알려 주었다. 그때의 나는 개나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같은 개.. 2026. 9. 17. 고기 쌈의 깻잎과 밭둑의 보라색 잎 사이에서 만난 차조기 삼겹살을 구워 먹는 날이면 상에는 대개 상추와 깻잎이 함께 올랐다. 나는 그중에서도 향이 진한 깻잎을 유독 좋아했다. 한 장으로는 조금 아쉬워 두세 장을 겹쳐 고기를 싸 먹을 때도 있었다. 고기와 마늘, 쌈장을 올린 뒤 깻잎으로 감싸 먹으면 다른 쌈채소보다 향이 먼저 느껴졌다. 내게 깻잎은 고기를 먹을 때 자연스럽게 곁들이는, 익숙하고 편한 잎이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 밭이나 밭둑에서 들깨와 함께 자라던 보라색 잎은 조금 달랐다. 초록색 들깨 옆에 붉거나 보라색으로 보이는 잎이 나란히 자라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그저 색이 특이한 깻잎쯤으로 생각했다. 나중에야 그 식물이 차조기라고도 하고, 자소엽이라고도 부르는 식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는 이름도 몰랐고, 밭 가장자리에서 초록색 잎과 다른 색을 .. 2026. 9. 14. 이전 1 2 3 4 ··· 8 다음